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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칼럼] 이등이 이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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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칼럼] 이등이 이등신!
  • 김동초 선임기자
  • 승인 2019.02.21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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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초 선임기자
[경인경제 김동초 선임기자] [경제 칼럼] 이등이 이등신!

110년 전 그러니까 1909년 11월 18일 하얼삔 역에서 탕!탕!탕! 한발은 가슴, 두발은 복부에..! 세발의 총성으로 伊藤博文(이등박문)이 골로 갔다.
이등이 이 등신이 쓰러지면서 한말이 걸작이다. 나를 쏜 놈이 누구냐? 필자가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조선이 쐈다. 이 띠발아 라고...! 그리고 이 인간이 또 한다는 말이 “부관 모리도 맞았냐?” 둘이 커밍아웃을 했는지는 몰라도 재차 개그를 했다. 그 몹쓸 넘의 일본 이름은 이또오 히로부미다. 본명은 도시스케[利助], 현대 일본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서, 메이지 헌법(1889)의 초안을 마련하고 양원제 의회(1890)를 수립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암튼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혁혁하게 공헌한 인간이다. 또라이 성 우익성향은 지금의 아베와 비슷하고 요즘 아베는 검은 봉다리에 든 본드를 마신 듯이 미친 듯 널 띠고 있다. 이시기에 일본을 바짝 경계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 될 위험도 있다.

한편 그 당시 일본과 이또오가 그렇게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이란 속이 시커멓고 거대장사꾼인 국가와 비열한 밀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데쓰라 가프트 조약으로 조선을 먹고 미국은 필리핀을 쳐드신다는 조건에 합의를 한 상태에서 중국에선 김구가, 미국에선 이승마니가 눈물겹게 미국을 향해 추파를 던져도 이미 미국은 이 조약을 통해 일본과 쌔한 잠자리를 같이 했기에 약발이 안 먹히는 시기였다.

미국의 루스벨트란 정신 나간 대텅은 사무라이라는 무사도 정신에 홀딱 빠져 루이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라는 허접한 일본분석의 찌라시를 읽으며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한갓 동네의 불량 고아 취급을 하고 있었던 때다.
후일 일본이 석유문제로 미국과 틀어지면서 미국이 원유공급 중단의 강수를 두자 궁지에 몰린 일본은 도라(호랑이)도라도라란 암호로 하와이 공습인 진주만을 치게 되고 제 이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쩍바리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 폭탄을 두들겨 맞으며 패망을 즐겼다.

허지만 미국도 덴노헤이까 반자이, 天皇陛下(천황폐하) 萬歲(만세)와 프랑스 엘렝비탈학파의 황당한 전쟁이론 맹목적 도스께끼突擊(돌격)로 무장한 일본에게 必死(필사)전술인 카미카제(神風)로 졸라 터지고 나서 B-29를 동원해 원폭으로 한방에 일본을 보내버렸다.
헌데 의문은 왜 수도 서울 같은 도쿄(東京))를 안 때리고 대한민국으로 보면 안산이나 시흥 같은 히로시마를 쳤는지는 알만한 인간들은 다 알 것이다.

각설하고 이또오가 골로 가 게 된 동기는 하얼삔주재 일본공사의 아첨을 통한 과잉 성 인원동원이 화근이었다. 안 의사는 러시아 의장대의 맨 끝에서 숨어서 접근했다. 와중 안 의사를 발견하고 살의를 느낀 이또오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칠 때 안 의사가 다가가 1.5m의 근거리에서 6연발 리벌버로 세 방을 샷!, 골로가는 이등는 횡설수설, “내 인생은 끝났다. 세발의 총탄이 나를 보냈다”는 등 씨부리며 숨을 거둔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 본 싱가폴의 자유신문 기자가 목격담을 남긴 것이다. 이또오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지만 사생활이 문란했던 그는 대의명분과 낭만을 중시했던 일본의 영웅들인 오쿠보나 야마가타에 비해 그리 인기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단지 정치는 타협의 마술이라는 근본을 궤뚫어 타협을 통한 정권의 핵심을 취득한 인물로서 정치적 술수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또오가 일본 근대화에 기여한 공로는 의심할 바 없지만 그는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으뜸가는 인물은 아니다. 사치와 방탕을 즐겼던 한편으론 俗物(속물)스런 인간이기도 했다.

암튼 쩍바리들이 그 당시 세계의 한쪽 구석, 동 남북을 주무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암튼 슬픈 우리조국의 현실은 쩍바리덜이 댕민국경제의 30%이상을 좌우지 하는 현실이다.
겉은 G10으로 번지르르 하지만 未生(미생)인 댕민국은 1945년 이래 아직도 닛뽄들의 세상인 것 같다. 이등이 이등신이, 오늘의 댕민국을 저주하는 지 아베같은 떠라들이 계속 설쳐댄다. 아c,이래저래 부애 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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