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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아픔을 딛고 9월의 따사로운 햇살아래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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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아픔을 딛고 9월의 따사로운 햇살아래 나를 만나다.
  • 이준복 수필가
  • 승인 2026.09.2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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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광교산에서 5장6보가 아닌 3장4보를 가진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암으로 간 일부, 쓸개 전부, 위 일부, 십이지장 전부, 소장 일부를 도려낸 분이다. 
  “산이 만병통치입니다. 매일 산을 탑니다. 몇 달 전 백두대간을 완주했습니다.”
  공황장애 때문에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나에게 그 분의 말씀은 어두운 하늘의 빛이었다. 
  ‘백두대간? 그래 바로 시작하자. 5장6보가 멀쩡한 내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백두대간 종주! 내 생애를 바꾸어 놓은 백두대간 종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인내의 한계, 내 육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처절한 고통 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첫 구간은 죽령-저수령 구간이다. 25Kg의 배낭을 지고 11시간 반에 완주했다. 첫 구간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최고의 육체적 고통을 맛본다. 워낙 더운 날씨라 체력도 많이 소진되지만 갈증이 심하다. 7리터의 물을 준비했지만 중간에 동이나 버린다. 물 없이 4시간을 걸으면서 죽음이 내 육신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탈수증이 심각했다. 지나치게 숨이 차고 심장이 콩 볶듯이 뛰며 근육이 마비된다. 가까스로 저수령에 도착한 나는 길 위에 쓰러져 아스팔트를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다음날은 저수령-차갓재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 고통을 맛본다. 10시간을 걸어 차갓재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워진다. 가까운 안생마을이 2.5Km, 길도 없고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비박을 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작은 텐트에 몸을 눕히니 편안함도 잠시 원인 모를 공포가 밀려온다. 검은 공포가 실핏줄을 타고 뼈 속 깊이 스며든다. 온몸을 뒤덮는다. 숨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다. 다만 공황장애 그 때, 그 모습으로 내 몸의 표면을 작게 할 뿐이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공포의 극한에서 나는 그만 목숨을 포기하고 만다.
  ‘여기서 죽자. 어차피 사람은 죽는 것, 좀 더 살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난다. 목숨을 포기하는 순간 편안함이 몰려온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난 지독한 평화다. 굳었던 몸이 눈 녹듯이 녹아내린다.
  ‘하하하하 그래 이거야. 바로 이거야. 하하하…….’
  ‘공황장애?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병이 아닌가?’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다음날부터 대간종주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행진이었다. 비, 바람, 구름, 햇살이 동행한다. 어김없이 풀벌레, 꽃나무, 바위들이 배웅한다. 숱한 난관도 있었지만 28일 후 지리산에 다다른다.
  어쩌면 이렇게 구색이 맞을 수 있을까? 대간종주의 대미를 장식하는 지리산의 노고단산장에서 내 삶의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차갓재의 공포’와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커다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취사장에서 밥을 지어먹고 소주 몇 잔을 걸친 후 산장에 들으니 옆자리에 스님 한분이 앉아 계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는 그 분의 향기에 점점 매료되고 있었다.
  “어제는 천왕봉에서 낙엽을 덮고 잤는데 꽤 춥더이다. 하루 종일 보리쌀 두어줌 먹었는데 배도 좀 고프고요. 하하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보리쌀 몇 줌 먹고 어떻게 그 먼 길을 걸어올 수 있을까? 9월이면 천왕봉에 서리가 내릴 텐데…….
  “그렇게 고행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문을 던져본다.
  “관념을 깨기 위함이지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관념입니다.” 그리고 
  "관념이 고통을 만들지요. 육체가 고통스러워야 관념이 깨집니다.”
  ‘그래 맞다. 그동안 나는 공황장애라는 관념 속에 갇혀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개가 친다. 생애 최대의 감흥을 맛본다.
  대화가 끝난 후 스님은 계속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뿐 자리에 눕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스님은 ‘묵언 10년’, ‘앉아서 주무시기 10년’ 고행을 하시는 스님 이셨다.
  새벽녘 불현 듯 눈을 뜨니 스님은 간곳이 없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가슴이 아리다.
  ‘부처님이 내게 은인을 보내셨구나.’
  이후 나는 삶의 고비마다 깨달음을 주신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곤 한다.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까지 천왕봉을 오르면서 내 관념을 깨는 작업에 돌입한다. 
  ‘나? 어리석고 가증스런 놈일 거야. 그동안 정의라는 가면을 앞세우고 얼마나 파렴치한 일들을 했을까?’
  ‘아내? 천사일 거야. 공룡 같은 남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어머니? 얼마나 힘겹게 살아오셨을까? 나 같은 불효자가 어디 또 있을까?’
  ‘공황장애? 하느님이 나에게 준 선물일 거야.’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나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도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즐겁다. 환희라는 놈도 스멀스멀 가슴 속에 피어오른다. 
  드디어 천왕봉 정상이다. 
  ‘의지의 한국인, 돌비석을 쓸어안는다. 대간을 타면서 겪은 숱한 역경과 어리석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얼굴에 땀인지, 눈물인지 흥건하다. 짐승 같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분명 공황장애가 떠나가는 진동이다.
  천왕봉 아래는 운해가 지천이다. 
  ‘저 아래에서는 하늘을 보지 못할 게다.’
  그러나 나는 9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오늘처럼 이렇게…….

  그 후 병원 약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끝으로 아내에게 ‘미안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죄송합니다.’ 지리산 스님과 고대, 아주대 병원 의사선생님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준복 시조시인·수필가
이준복 시조시인·수필가

약력

『문학 21』 시조 등단 〈2006년〉

시조시인

《행복제작소》 소장

저서 : 시조집 『산』 『아, 백두대간』 『행복으로의 초대』

『걸음을 바꾸면 건강이 바뀐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다이어트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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