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등성이 푸른 옷 입고 우쭐대던 나목들
호수에 묻혀 울음 삼키고
청솔가지 꺾어 가마솥에 불 지펴 소죽 끓이면
불어오는 실바람에 연기되어 사라지고
평상에서 옥수수 피리 불던 벌거숭이
모기떼 쫒던 빛바랜 초가집
호수 위에 둥둥 떠다니면
삼베 짜던 어무이 멍석 엮던 아부지
물결따라 손짓하고
하늘에 뜬 별과 달 눈물만 그렁그렁
화투공장 철수 가발공장 춘식이
구로동 하늘아래 전기불에 녹는다
* 수몰된 고향을 그리는 목적시
시평(詩評)
김현탁 시인의 ‘그림자 없는 풍경’의 시에는 유년의 추억이 녹아 있다. 누구에게나 유년은 선명하게 가슴 속에 찍혀 있는 것처럼. 타향살이로 힘들어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한 편의 시로 나타낸 절창의 시다. 1연의 나무들이 우쭐대던 시절은 싱싱하고 풋풋한 어린 시절을 대변한 것이리라. 그런 어린 시절이 그리움 담은 호수에 잠겨 삼키는 울음은 어느 때보다 아리고 진득하다.
김현탁 시인의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 와룡면이다. 2연의 풍광은 오롯이 김현탁시인의 고향을 고스란히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옛날에 살던 와룡마을의 고향풍경이 연기 오르듯이 소물소물 피어난다. 3연에는 어느 땐가 그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어찌 그렇게 선명하게 묘사 했는지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도 연상을 할 수 있게 풀어 놓았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시인은 하늘에 뜬 별도, 달도, 본인의 마음처럼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이라 유추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문장에서 어느 누군들 가슴이 저절로 젖지 않을 수 있으랴.
마지막 연으로 내려가 두 줄의 시 문장을 살펴보자. 서울로 돈 벌러 간 화투공장 철수, 가발공장 춘식이를 데려와 고향 그리워 전깃불에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은 독자를 사로잡는다. 최고의 은유법으로 마감을 하는 이 시 작법에 또 한 번 감탄할 수 밖에.
수 십여 년 동안 문하생들을 위해 강의를 하며 연구하고 습득한 그의 문장은 앞으로도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이 시로 인해 타지에서 겪는 슬픔과 외로움이 절제된 고도의 시작법을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로도 김현탁 시인의 시를 가까운 시일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램한다.
< 정명희 경기문학인협회장/ 시인 >
약력
시인, 소설가
문학박사, 협성대교수, 한국현대문학연구소장
종합문예지 ‘문학과 비평’ 대표
1977년 수필문학 에세이 당선
2001년 한민족 문학상(소설부문)
2003년 한국예총 예술 문화상 대상(문인부문)
2004년 경기도문화상(문학부문)
2021년 홍재문학상(시 부문) 외 다수
저서: 첫 눈 외 (전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