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의 그늘아래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 무슨 이유로 그들은 숨죽이며 소리조차 내지 못할까.
먼지가 뽀얗게 앉아버린 방을 채 닦을 새도 없이 켜켜이 들어붙은 오래 된 가방을 비우며 짙어지는 어둠의 냄새를 맡는다, 길고도 지루한 장마와 초를 다투는 가려움이 목 주변을 배회하며 땀띠라는 뾰루지를 선물로 주었다. 자극적이고 요란한 무기를 가지고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내 뱉는, 앙큼하고 가학적인 여름은 올해의 가장 큰 무기라며 자랑스럽게 불타는 햇볕을 선물로 흠뻑 주다가 떠나 버렸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닦달을 하면서 튀기던 해의 불덩어리는 생각만 해도 목덜미에 진땀이 주루룩 솟아난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선풍기만으로 이 여름을 난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다. 그가 없는 집에서 해마다 똑같이 에어콘을 겨지 않으며 더위를 견뎌내고는 뿌듯해 하는 자신을 투영해 본다.
그런 상황, 누구에게는 맞고 누구에게는 틀린 일들, 생각, 행동이 천차만별로 묘하다는 것이다. 저절로 이해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신기하기까지 하다.
창문을 닫지 못하는 여름을 밀어내고 찬 기운이 머리끝에 앉았다. 왕성했던 녹음의 기억을 빛바랜 앨범 위에 내려놓고 흐려져 간 시간들을 정리하는 손 끝에 미세한 떨림이 감지된다. 도는 아무나 터득하는 것이 아니다. 진득한 고생 끝에 배어 나오는 슬픔을 깨달을 때 비로소 완성인 것이다.
사람들이 깨달음을 먼 곳에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실생활에 보이지 않는 작은 깨달음도 도에 가까이 간다는 것을 그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탁을 하려고 공공장소에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돈 된 쇼파와 책상, 접대하는 사람들이 연습을 수백 번 한 것처럼 가지런히 인사를 한다. 공연히 숙연해 지는 마음, 그들의 수장이 원했으리라. 공감을 했으니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함께 하는 것이다. 어디 가서 그런 대접을 받으랴.
결과는 빈손이지만 인사 때문에 마음이 풀려 버린다. 그 어느 것도 비워버리자. 욕심이 많으면 두근거림밖에 더 있으랴.
이제 마음 속 계절도 바뀌는지 미리 찬바람이 분다. 한 번도 그 이유에 대한답을 주지 않는 시간. 그러면서 마음이 울적해진다. 담을 것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 비우지 못한 그 무엇이 있느냐고 되물어 보고 싶다.
젊고 싱싱했던 날 나도 그도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 사진 속에서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그동안 잘 견뎠느냐고 묻는 것도 같다. 사진 하나씩 갈피에서 꺼내 손으로 닦고 들여다 보다가 잘 보이지 않고 낡아 버린 사진부터 하나씩 봉지 속에 담는다. 이제는 잊어버려야지, 옛날도, 그보다 더한 옛날도 마음 속 어둠에게 보내 버려야 한다.
무엇이 좋은지 딸애가 함박웃음을 날리고 있다.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웃음바이러스가 제대로 퍼지나보다. 사진 속이 아이들, 이제 그들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 내 곁에 있다. 아들보다는 딸애가 더 곱상하게 건강걱정을 해 준다. 저도 염증 때문에 아파하면서, 잘 지내느냐 묻는다.
밤의 휘장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우리는 그 휘장 아래서 꿈을 꾼다. 소리를 못 내는 것은 더욱 낮아지는 과정일 것이다. 아래로 낙하하는 삶의 무게여.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창문을 닫아야 한다. 푸르던 나의 나뭇잎이 하나둘씩 낙엽이 질 것이다. 그 전에 나는 쓰고 그들이 받을 것이다. “고마웠어, 그리고 잘 견디며 살아줘서 행복했어. 우리 모두 건강하자.” 라고 쓴 낙엽의 편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