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봄은 유난히 짧은 경향이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새 잎을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녹음이 무성해져 있다. 그런 풍경을 보고 봄이다 여름이다 구분을 할 수가 없다. 벌써 꽃은 다 떨어지고 제법 커버린 잎새들이 온 천지를 덮었다. 예전에는 산 숲사이로 피어있는 진달래를 발견하면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늦게 핀 진달래 몇가닥을 보며 니자가게 된다. 풀 죽은 꽃송이들 몇 몇이 그야말로 숨어서 가여운 얼굴로 우리를 살피고 있다. 봄과 여름사이가 아니라 봄과 여름이 겹쳐서 훅 들어 온 기분이다.
봄이라는 느낌으로 여유를 즐기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은 분명히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가. 옷장으로 들어갔던 웃옷을 걸치고 나가야만 감기를 걱정하지 않게 된다. 오다가다 선뜻한 느낌이 들면 곡바로 기침이 콜록거린다. 이때는 전혀 대낮의 온도를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로 냉냉하다.
한낮이다. 영낙없이 여름 한복판이다. 밖에서 햇볕을 맞고 다니는 사람들은 타들어가는 뜨거움을 그대로 받는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그 날은 서둘러 아침부터 차를 타고 나간 이유가 있었다.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거칠고 주름진 얼굴의 낯선 모습을 보았다.
너무 놀라서 ‘누구신지요?“라고 물을 뻔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망가질 수가. 그동안 무엇을 했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오싹할 정도로 엄습했다. ’그냥 그렇게 사는거야. 받아들일 것은 받아 들이고.’ 위로의 말로 대신하기에는 너무 변한 내 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관리를 할 때 무슨 큰 명분이라도 있는 것인 양 외면하고 있었던 시간이 삐죽이 입술을 내밀고 빈정거리는 것 같았다.
마음고생을 하던 중 지인이 곁에서 불을 지폈다. 그녀는 아주 도전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만날 때마다 주위 상황에는 관심이 없고 얼굴관리만 하면서 무슨 말인지 똑 같은 말만 계속해서 해 댔다.
”이 것을 바르면 주름이 펴져요. 한 번 해 봐요.“
몇날 며칠을 쫓아 다니며 보채는 바람에 한 번 가볼까? 하고 따라 나선 것이다.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였다. 프로그램에 따라서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다. 다이어트도 함께하며 한나절 동안 내내 얼굴에 화장품을 발랐다. 거칠어진 피부에 거침없이 화장품이 들어가는 순간 놀랍게도 조금씩 얼굴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잘하면 예뻐지겠는데’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중간에는 돌아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박수도 치고 춤도 추며 지내다 보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렇게 살면 참 좋겠다 싶었다.
건강을 위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참여한 사람들은 건강미가 솟구쳤다. 대부분 자기관리를 잘한 사람들로 보였다. 나 혼자만 외계인 같았다. 많은 생각이 들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 돌아오는 길, 차 속으로 들어오는 열기가 만만찮다. 이렇게 여름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위에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햇볕이 점령군처럼 마구 차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하여 거울을 보니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떠 올랐다. 자외선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모습은 저절로 거울 속의 나에게 다시 묻고 있었다.
“뉘신지요?” 기가 막혔다.
새빨갛게 타버린 얼굴, 자외선으로 인해 검은 점들이 거뭇거뭇하게 얼굴 전체에 쑥쑥 나타난 것이었다.
‘아뿔싸. 썬크림을 안 발랐네,’
여름을 맞이하기도 전에 얼굴이 큰 날벼락을 맞이한 것이었다.
‘한동안 속좀 썩겠는데.’ 주름을 펴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도 넘은 기대감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터득한 것은 ‘준비하지 못한 자기관리는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제대로 경험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