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가방사기를 좋아하고, 가방매기를 좋아하며 가방 속에 무엇이든 넣어 두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다 그녀의 가방 속을 들여다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녀의 가방은 보물창고다. 남들은 그것이 무슨 보물창고냐고 비웃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녀는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기억속의 저장고와 같아서 함부로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녀의 가방 속으로 들어 간 것들은 하나같이 움츠리고 있고 자다가 나온 사람처럼 부스스한 모습이다.
어느 날 그녀의 가방을 뒤집어서 속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 보았다. 물건들은 모처럼 만에 숨을 쉬는 것처럼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꿈틀꿈틀 거리는 몸짓으로 사방을 둘러 보는 것 같았다. 마치 생물처럼 느껴져 ‘에그머니나’하고 고개를 돌렸다. 쏟아 놓은 물건들은 한 바구니가 되었다.
그 중의 하나를 살펴보니 글자가 다 지워진 영수증 쪽지다. 언제 집어 넣었는지 행쓱한 얼굴로 눈도 멀고 입도 뜯어진 형상으로 후줄근하게 접혀져 있다. 말하자면 구겨진 영수증쪽지가 숨을 쉬지 못하고 다른 물건들로부터 눌려져 쩔쩔매고 있는 듯했다. 색은 이미 바래져서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영수증의 실체는 숫자다. 몇월 며칠에 무슨 쇼핑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가 있다. 그녀가 만약 어느 식당에서 몇 사람과 해물찜을 먹었다고 해 보자. 점심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술이 몇 병, 음료수가 몇 병인지 고스란히 숫자로 찍혀져 있다.
요즈음 00사람에 대해 조사를 하는데 무엇을 배달했는지 상세하게 캐고 다닌다고 한다. 같은 맥락이다. 영수증 속에는 일기보다 더 한 그 날의 사연들을 유추할 수 가 있다. 그래서 영수증을 잘 보관한다며 가방에 넣는다. 혹시 그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하면 바로 꺼내서 이야기를 해 주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많은 모함을 당하고 그 이유를 캐내려는 사람들에게 증거를 내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악세서리다. 그녀를 좋아하는 언니가 수도 없이 만들어 준 악세서리인데 거의 대부분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가방 속에 손을 넣을 때마다 그 악세서리가 잡히면 웬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언니의 마음을 만지는 것 같다. 밤마다 잠 안자고 악세서리를 만드는 언니의 정성이 남달라 사람들은 그 언니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언니가 만들어 준 악세서리를 달고 다니거나 끼고 있지 않으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언니는 봉사정신이 있는 회원이나, 어떤 인연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에게는 꼭 악세서리를 만들어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언니의 악세서리를 가방속에서 확인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마치 언니가 어디에서든지 잘 계시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필기도구다. 글씨를 쓰는 도구가 많은데 그 중에서 특히 볼펜과 플러스펜, 연필들이다. 가끔은 아이패드를 터치하는 아이패드 펜슬도 있다. 그런 것들을 쓰고는 무조건 가장에 집어넣는다. 한 번은 지인이 “ 그 것 제 펜인데요. 가방 속으로 들어갔어요.” 해서 웃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볼펜이 가방 속에 있다는 생각을 안하고 빌려서 쓰다가 그만 집어넣기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이다.
가방 속 볼펜을 볼 때마다 누구를 만났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펜으로 글씨를 쓰고 약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볼펜을 아끼는 이유에서다.
이 일 저 일 겹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약간 당황하기도 하지만 무엇부터 할지 고민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가방 속 볼펜은 총천연색이다. 그 볼펜으로 수많은 인연들을 쌓았으리라.
볼펜을 꺼내 놓으면 홀가분하기도 하다. 가방 속이 답답할 텐데 주인을 잘 못 만나서 고생이다 싶다.
그 것 말고도 가방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많은데 이번에는 과자와 사탕봉지다.
요즘 사람들은 작은 물건을 주기 좋아한다. 큰 것들은 부담이 간다고 생각하는지 손톱보다도 더 작은 사탕이나, 작은 과자를 슬며시 넣어 준다. 언제 먹을지 몰라도 받아서 가방 속에 넣는다. 그 사람들의 작은 정성에 감동을 받아서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그 밖에 또 있다. 살펴보니 열쇠고리, 회의자료, 물티슈, 하다못해 작은 클립과 건강식품, 수첩도 있다.
이만하면 그녀가 얼마나 가방을 중시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방만 들고 다니면 거의 필요한 것을 꺼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위를 넣고 다니기도 하고 작은 손톱깎기도 들고 다닌다.
오늘은 그녀의 가방을 새롭게 바꾸는 날이다. 그동안 넣고 다녔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녀는 버리는 것이 아쉽다.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다시 바구니에 옮겨 담는다. 아마도 얼마쯤 가방 속 물건들은 그 곳에 머물 것이다. 아쉬움이 많은 그녀가 버리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바구니는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여 지나간 흔적을 찾아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녀는 가방 속에 또 새로운 흔적들을 집어넣을 것이다.
그녀의 가방은 언제나 무겁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사기를 좋아하고 가방매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