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 서울
    B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B
    미세먼지
  • 부산
    B
    미세먼지
  • 강원
    B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B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B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수필향기] 70이라는 숫자
상태바
[수필향기] 70이라는 숫자
  • 김선희 수필가
  • 승인 2025.04.17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벌써 칠순이라니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70이라는 숫자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헐렁거린다. 그래도 굳이 70이 된 나를 표현하자면, 젊을 때보다 생각과 행동은 깊어졌지만 과감성은 떨어지고, 용기를 내야 할 상황에 부딪치면 주춤거린다. 한 발자국 뒤에서 조용히 지켜본다는 말로 미화해도 그만큼 순발력이 떨어졌다는 뜻일 것이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휴대폰을 찾느라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한다. 미역과 비슷한 곰피라는 단어는 '피' 한 글자만 생각나서 남편의 도움을 받아 곰피라는 단어를 조합하기도 한다.
세안 후 날마다 보는 거울 속의 눈가 주름도, 코 옆 팔자주름도 작년에 비해 많이 늘었다. 한 달마다 염색해야 하는 흰머리는 고사하더라도 최근 허리로 내려오는 어설픈 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언젠가 언덕길을 내려올 때 옆으로 발을 디디며 내려오는 자신을 보고 내심 놀란 적이 있다. 거침없는 직진형이었는데, 넘어지지 않으려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은딸과 애경백화점에 새로 오픈한 에슐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초밥과 뜨끈한 국물의 쌀국수, 각종 샐러드를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며 만족스러운 포만감과 미식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올해 엄마 생일엔 어디서 밥 먹을까요?" 내 생일을 말하는 딸의 어투에 이상함을 감지한 남편은 "올해 엄마가 칠순이니 좀 근사한 곳에 가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작은딸의 큰 눈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올해 칠순이야? 정말 몰랐다는 듯 되물었다. "엄마가 언제 칠순이 됐어?" "얘가 무슨 소리야? 엄마 나이도 몰랐어?" "응, 진짜 몰랐어." 아이들에게 나는, 나이와 상관없는 어제 본 엄마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보다 찡해지는 코끝 통증을 느꼈다. 내가 엄마에 대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내가 철이 들기 전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와의 일도, 추억이라는 단어도 없다. 엄마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한 우울감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의 부재에 주눅 들지 않도록 할머니와 언니의 배려가 있었고, 종교가 구심점이 되어 별 탈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큰딸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해, 엄마. 나도 올해 엄마의 칠순을 정말 몰랐고, '곧'이라는 생각만 했다"고 한다. 엄마라는 존재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딸들에게 주고 있었다는 이해로 받아들이며 한차례 웃을 수 있었다.
'만 나이로 하자…'로 간단하게 마무리 짓고, 글 많이 쓰시라는 덕담과 함께 최신형 태블릿 PC를 선물로 받았다.

시어머니 칠순 때는 일주일 전부터 시골 내려가 음식 장만을 했었던 생각이 난다. 마당에 차일을 치고 장구 소리도 요란하게 며칠 동안 동네 잔치를 하며, 십 남매의 자손 수십 명이 모여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새롭다. 그때 시어머니의 모습은 쪽머리에 비녀를 꽂은 범접할 수 없는 집안의 어른이셨다.
나의 70은 단발 커트를 하고,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즐겨 신는, 백팩을 메며 나이는 먹는 게 아닌, 나이로 존재할 뿐이다. 비록 386 버전의 컴퓨터가 부팅을 위해 시간을 기다려야 하듯, 몸과 마음의 삐걱거림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조언처럼 글도 쓰고 배움의 기쁨도 느끼려 한다. 덧붙여 여행 계획도 세워 보고 싶다.

공자는 70을 '종심'이라 하고, 두보는 그의 시에서 '인생칠십고래희'라고 했다. 일흔 살을 산 이는 예로부터 드물었다고 하지만, 현대 사회의 칠십은 마지막을 맞는 마음이 아닌, 숫자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70이라는 숫자는 69보다 크지만 71보다 작으며, 70에 걸맞은 삶을 잘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김선희 수필가
김선희 수필가

약력

경기한국수필가회원
경기여류문학회 회원
수원문인협회회원
수원사랑백일장수필부문 장원(1997)
수원여성백일장 부문 장원(2000)
경기한국수필작품상(202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