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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드랭이마을의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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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드랭이마을의 비밀정원
  • 이명주 수필가
  • 승인 2025.04.03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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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빛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곳, 계절이 가고 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곳. 이곳에 서서 마을을 굽어본다. 바둑판처럼 반듯한 논 자락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마을은 아침을 맞고 있다. 푸른 들판 사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책하는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논 물꼬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로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도 잘 보인다. 가까운 아랫집 밭에 나온 여자가 아침 밥상에 올릴 채소를 따기 위해 채마밭으로 들어가고 있다. 

들판을 넘어, 여섯 량짜리 전동열차가 달리고 있다. 오래전에 인천 쪽 바닷가 지역에서 소금이며 온갖 해산물을 싣고 뿡뿡거리고 지나던 수인선 노선이다. 구간 폐쇄로 저 노선은 오랫동안 방치된 채 잡초더미에 덮여 있었다. 가까운 야목역에 가면 흉한 모양을 드러낸 철로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수인분당선으로 복구돼 아침부터 밤까지 수십 분 간격으로 달리는 전철이 철거덕철거덕 그리 요란하게 않은 소리로 옛 풍경을 되살리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전망 좋은 이곳에 꽃과 나무, 벌과 나비들이 어우러진 정원이 있다. 나와 내 가족이 찾고, 가끔 가까운 이웃 아낙네들이 와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풀어내는 곳이다. 얕은 산자락 밑이지만 지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끼리만 아는 정원이라 해서 ‘비밀의 정원’이라 이름 붙었다. 

목장 경영 25년이었다. 목장 건물은 허물었고 터만 남았다. 그 옆으로, 소먹이가 되는 옥수수를 심던 1,100평정도의 땅이 있었다. 목장 사업을 접으면서 경사진 그 땅을 포클레인으로 평탄하게 작업을 했다. 밀어낸 흙으로 언덕을 만드니 그 너머에 움푹 내려앉은 150평의 사각 평지가 생겼다.
그걸 보고 갑자기 욕심이 생겨났다. 이럴 때 쓰는 말인지 모르지만, 견물생심이라 할 만했다. 밭의 소유주, 남편에게 호기 있게 말을 걸었다. 
“안일환 씨, 고추나 뭐 다른 것 심지 말고 꽃 좀 심어보자고요. 이 땅을 나를 주면 안 될까?”
기선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응수는 뜻밖이었다. 
“그러지 뭐!”
이제 밭을 경작할 기력이 쇠해진 남편이었다. 목장을 하면서 옥수수를 심고 고추를 심던 활기찬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 
그날부터 네모난 밭은 몸살이 날 지경이 되었다. 오래도록 정원에 꽃을 가득 가꾸어온 아랫집 여자를 데리고 꽃시장으로 나무시장으로 헤매고 다녔다. 시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내가 꽃밭을 만들자고 나선 걸음에 처음 보는 신선한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꽃모종이며 묘목을 들여다보고, 흥정을 하고 상자나 푸대에 꽃모종을 담아서 환한 모습으로 총총 사라진다. 그동안 내가 외출할 때 즐겨 다니는 공간은 서점이었다. 나는 책을 사거나 책을 읽고 가는 사람에 익숙했다. 그랬건만, 어느 날부터 나는 생쥐가 풀 방구리 드나들 듯 꽃시장을 다니면서 갑자기 그 동적인 사람들의 대열에 섰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30분쯤 되는 곳에, 한때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영한 ‘아내의 정원’이 있다. 바로, 스토리퀼트 작가 안선홍 님이 오산시의 서랑동 호숫가에 가꾼 독보적이고 환상적인 정원이다. 내 비밀의 정원은 감히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수시로 찾아들어 계절마다 달라지는 정경에 취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곳을 드나들면서 나도 언젠가는 꽅밭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꽃밭에 풀어 놓은 잘생긴 수탉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암탉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실제 나는 그 정원을 배경으로 수필 「수탉의 사랑 이야기」를 썼다.  

먼저 정원의 지도를 만들어 보았다. 앞쪽으로는 가족이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을 널찍하게 남겨놓았다. 당연히 그곳이 가장 중요한 자리였다. 그 앞으로는 여백을 주기 위해서 T자형으로 잔디를 심었다. 그 작업은 우리 가족의 성인 남자들이 날을 잡아 의식을 치르듯 함께 했다. T자형의 잔디밭 오른쪽 언덕에는 꽃잔디를 잔뜩 심었다. 그 언덕 밑으로는 우리 집 뒤뜰에 있던 수선화의 구근을 옮겨 심었다. 그 밑으로 남편이 먼저 체리나무 두 그루를 기념식수 했다. 그리고 꽃잔디를 심어둔 언덕 밑으로 모과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에 분홍색 꼬투리를 달고 있는 아카시아나무 그리고 여러 겹의 명자나무를 심었다. 마지막으로 근사한 주목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T자형 잔디밭 왼쪽으로는 관목을 주로 심었다. 화살나무, 분홍선유화, 산딸나무, 서부해당화, 병꽃나무, 남천, 작약, 말발도리, 왕벚꽃나무…. 심어도 심어도 땅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T자형 끝으로 아치형을 만들어 덩굴장미를 올려볼 것이다. 꽃밭 둘레에는 뱀이 제일 싫어한다는 메리골드를 촘촘히 심어놨다. 

포클레인으로 평탄하게 작업을 했을 때는 풀도 없는 붉은 흙만 있었다. 거기에 꽃모종을 하면서 장차 꽃이 피어나고 유실수 나무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비밀의 정원을 상상했다. 그런데 사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이 불어오면서 풀씨가 날아들었다. 꽃모종을 심고 나면 봄비가 왔고, 그 봄비에 풀도 쑥쑥 자라났다. 풀을 뽑고 다시 모종을 심고 풀을 뽑고를 반복했다. 내가 꿈꾸던 꽃밭이 풀밭이 된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방심할수록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이른 아침부터 작정하고 며칠 풀을 뽑았다. 밑에 집 여자가 깜짝 놀란다. “어쩜 좋아, 얼굴이 못쓰게 돼버렸네….” 남편도 화들짝 놀란다. 밀짚모자를 사 와라, 토시를 끼고 꽃밭을 가꿔라, 주문이 많다. 아프리카 추장 마누라가 되어버리는 일은 순간이었다. 오히려 ‘비밀의 정원’지기는 태연하다. 열심히 세수를 해볼 도리밖에 다른 수가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지나는 밭모퉁이에서 마늘밭에 풀을 뽑고 있는 남편을 일별하고 꽃밭으로 간다. 그 발걸음은 내가 만들고 있는 꽃밭에 대한 예의이자 애정이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광 자매’ 드라마에 나오는 윤주상, 그 남자의 특유한 목소리로 양미간을 찌푸리며 “아닌 건 아닌겨. 이건 아니라고 봐.” 그렇게 말하는 톤을 빌려서 남편의 지청구가 내 발목을 붙잡을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아직은 자신의 영역에서 평화롭다.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꽃밭주인 눈치도 보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자주 나타난다. 동네 여자들도 벌 나비처럼 찾아든다.

무심한 눈길 끝으로 발아래 끝없이 펼쳐진 풍경들을 담고 있는 이 비밀의 정원에서 나는 꿈을 꾸어본다. 내 비밀의 정원에 손주들이 꽃을 보러 올 것이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호미를 잡고 풀도 뽑아줄 것이다. 그런 날이면 내 목소리는 도레미파솔 ‘라’의 음에서 멈춰 경쾌하게 공기의 파장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일단 시작을 해놓았다. 시간이 흐르면 나무도 자랄 것이고 여러 종류의 다년생 꽃과 한해살이 꽃도 피어날 것이다. 유튜브 방송을 보다 알게 된 한 정원지기가 말해 주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가꾸다 보면 그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침내 행복한 정원지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릉도원처럼 우연히 풍경에 사로잡혀 들어오긴 했는데 비밀의 정원에서 잠시 쉬다 나가는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길을 잃어버려도 억울하지 않은 그런 비밀의 정원을 가꾸어볼 참이다. 정원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를 이곳에서 이웃지기와 내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첫 마음을 꽃밭에 새긴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함에서 한 걸음 벗어나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첫 번째 용기를 비밀의 정원에 꼭꼭 새겨둔다. 
 


이명주 수필가
이명주 수필가

약력

경북 상주출생.

상주여중. 수원여고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한국문인>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수원문인협회,경기수필회원으로 활동중

백봉문학상. 경기수필작품상.

수필집 「먼길 돌아온 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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