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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한줌의 흙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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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한줌의 흙으로 남는다
  • 진숙자 시인·수필가
  • 승인 2024.09.25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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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 속에 하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새싹은 돋아난다. 
연두색 나뭇잎이 초록으로 변할 무렵 꽃도 피고 화려한 여름도 온다. 
지겹도록 뜨거운 태양도 태풍이 오면 슬그머니 물러나고, 소슬바람 불어와 색동옷 입은 나무들이
화장한 듯 아름답다.
맑은 가을 하늘이 넓은 바다처럼 보인다. 그 바다에 뛰어들어 풍덩, 풍덩 물장구치며 놀고 싶다.
해가 질 무렵 주황색 노을이 산중턱에 걸려있다. 
가을걷이하는 들녘이 어릴 적 부모 형제와 볏단 나르던 추억을 부른다. 철없던 시절 친구들과 동
갑내기 사촌 오빠와 김씨 할머니 담장 아래서 수다 떨다가 시끄럽다고 싸리 빗자루로 매를 맞았
다. 그때 그 생각이 났다며 시골에 사는 사촌 오빠가 싸리 빗자루와 늙은 호박을 주차장에 내려
놓고
"추억의 싸리나무 빗자루다. 주택에 사는 동생이 요긴하게 쓰면 좋겠네."
새까맣게 탄 얼굴에 하얀 이가 보이도록 미소 지었다.

우리는 지난 옛이야기로 한바탕 웃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울타리를 싸리나무로 심으셨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싸리나무에도 새싹이 돋아났다.
양식이 고갈된 보릿고개 시절 어머니는, 싸리나무 순을 따서 삶아 무친 나물에 들기름 넣고 비빔
밥을 만들어 주셨다.
큰 잎은 부각을 만들어 간식으로 주셨다.

싸리나무 피는 계절이 오면 하얀 수건 쓰신 어머니가 아련하다.
좁쌀만 한 싸리 꽃잎이 눈에 아른거린다. 꽃이 지고 열매 맺은 가을이 오면 아버지는, 싸리나무
를 잘라 열매와 씨앗을 털어 내고 키를 맞추고 빗자루를 만드셨다.
만든 빗자루는 마당 귀퉁이에 세워 놓고 골목과 마당을 수시로 청소하셨다. 한해가 지난 빗자루
는 닳고 닳아 몽당 빗자루가 된다.
그 빗자루로 아버지는 소 등을 긁어 주신 후 불쏘시개로 쓰셨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다시 땅으로 간다.
가서 거름이 되는 싸리나무처럼 명예와 권력이 있는 부자도 한줌의 흙으로 남는다.


진숙자 시인·수필가
진숙자 시인·수필가

약력

충북 영동군 추풍령 출생

수원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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