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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벗겨라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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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벗겨라 바지
  • 오현진 수필가
  • 승인 2024.07.04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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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치 개울 길은 계절 따라 풀과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다. 이른 봄엔 은빛 버들강아지가 제일 먼저 눈을 뜨고 민들레가 길가에서 반겨준다. 꽃송이를 키워 가던 벚나무는 어느 날 화들짝 평행선 꽃길을 열어준다. 철쭉이 다투어 피고 탐스러운 수국 다음엔 노랑색 창포가 단오를 알려준다. 6월 산책로엔 애기똥풀이 무성하다. 애기똥풀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난다. 지금의 경기도청 부근 작은안골은 병풍처럼 낮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가남골 고개에 서면 동네 전체가 보이고 백산 산길을 내려가면 원천방죽이었다. 98년 6월, 모내기가 끝나고 며칠 후 용중님과 어머니는 모를 지우러 논에 가셨다. 저녁 준비를 하려고 쌀을 꺼내러 광으로 갔더니 광 문 앞에 아버님이 지팡이를 짚고 엉거주춤 서 계셨다. 아버님은 며느리를 보시더니 기다리셨다는 듯 “ 벗겨라 바지” 하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순간 아버님의 배추색 추리닝 가운데가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당황해서 바깥마당으로 안마당으로 다니며 어찌할 줄 몰랐다. 우선 가스 불을 켠 후 양동이에 물을 가득 올려 놓고 시령골 논으로 달려갔다. 시령골 논은 모 지우기가 끝났는지 용중님과 어머님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무수막골 논으로 달려가는데 논둑길 양 옆에는 노랑색 애기똥풀이 많이 피어 있었다. 애기똥풀을 하나 꺾으니 노란 진액이 방울방울 나오며 아기들의 어린 똥물이 떨어졌다. 논에 계신 어머니는 허리를 굽히신 채 내가 가까이 가도 모르셨다. 어머님께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반대쪽에 있는 용중님에게 뛰어갔다. 남편에게 아버님이 똥을 싸셨으니 씻겨드려야 한다고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용중님은 일하다 말고 어떻게 가느냐고 조금만 하면 된다며 일을 멈추지 않았다. 논두렁 위에 근심어린 얼굴로 쪼그리고 앉았던 나는 애기똥풀을 내리치면서 모를 심는 것보다 아버님을 빨리 씻겨 드리는 게 중요하다며 언성을 높였다. 용중님은 나보고 그러지 말고 엄마한테 얘기하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어머니는 “에미야” 하시며 며느리를 부르셨다. 나는 쭈뼛거리며 어머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머지 일은 용중님에게 맡기고 진훍투성이 검정스타킹을 벗으셨다. 같이 따라 온 검둥이가 앞장서서 집을 향해 달려갔다. 무수막골 개울둑을 건널 때였다. 까치독사가 다리 가운데에 보였다. 검둥이는 못 보았는지 무심코 앞발로 뱀을 밟고 지나갔다. 뱀도 놀랐는지 논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까치독사가 들어간 논에는 까만 물뱀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심장이 두근거려 손을 가슴에 대고 빨리 걸었다.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들이 위 논두렁에서 아래 논으로 뛰어내렸다. 순간 왼쪽발이 논두렁 아래쪽을 헛디디며 풀썩 넘어졌다. 뒤에서 따라오시던 어머니가 다치지 않았느냐고 소리를 지르셨다. 무릎이 쓰라렸다. 말뚝 박은 자리에 부딪혀 흙 묻은 정강이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뒷동산으로 올라가던 검둥이가 뒤돌아서서 “멍멍” 땅거미 지는 들녘을 울리던 날이었다. 치매가 심해지셨던 아버님은 그 해 생신 상을 받으시고 사흘 후 74세로 작은 안골 집을 떠나가셨다. 내일 모레 아버님 기일이 다가온다. 아버님은 며느리가 진짜 내 자식이라며 데리고 살았던 둘째며느리를 과분하도록 아껴주셨다. 할아버지께서 토지개혁 때 고생하시며 상환 받은 큰 안골 논을 삼대에 걸쳐 용중님에게 물려주셨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부모님을 모시며 농사를 짓는 자식에게 상속세 없이 땅을 물려주는 눈물어린 큰 선물이었다. 칠 남매에게 사각모를 씌워주신다고 새벽길로 30년 동안 용산으로 통근하셨던 아버님 “벗겨라 바지” 허스키한 그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신재정 시인의 「고저스」 선인장

 


오현진 수필가
오현진 수필가

약력

시혼 동인지로 문학활동

수원여류문학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경기수필 사무차장 역임

저서 2008년「이의동 이야기」수필집 출간

수상 2017년 경기수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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