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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너와 마시는 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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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너와 마시는 차 한 잔
  • 임수진 수필가
  • 승인 2021.10.25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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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설가2004년 월간 「수필문학」지에 『아름다운 화석』으로 등단 현진건문학상 신인상, 경북일보문학대전 대상 수필집 「나는 여전히 당신이 고프다」 「향기 도둑」 기행수필 「팔공산을 걷다」 단편소설집 「언니 오는 날」
수필가, 소설가2004년 월간 「수필문학」지에 『아름다운 화석』으로 등단 현진건문학상 신인상, 경북일보문학대전 대상 수필집 「나는 여전히 당신이 고프다」 「향기 도둑」 기행수필 「팔공산을 걷다」 단편소설집 「언니 오는 날」

 한동안 글을 못 쓰고 읽지 못했다. 하루 2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최소 원고지 석 장은 쓰자. 죽자고 안 풀리면 책이라도 읽자며 자신과 했던 약속이 깨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감금 아닌 감금 상태가 이어지면 글을 더 많이 쓸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계속 익숙한 공간에 고여 있자 머리가 텅 비어갔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작정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머릿속이 하얗다. 쓰는 일을 해온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다. 서두부터 막힌다. 고속도로에서 이유도 모른 채 한도 끝도 없이 정체되어 있을 때의 막막함이랄까. 결국 컴퓨터 창을 닫고 책장을 훑었다. 기분은 계속 파도타기를 했다. 난데없이 우울하고 기습적으로 권태가 밀려왔고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절망의 끝에 섰다.

 마음의 반란. 손가락을 다치면 치료를 하면 되고 모기에 발가락을 물리면 가려운 부분에 물파스를 바르면 되지만 마음이 불편하니 속수무책이다. 궤도에서 이탈한 마음을 봐달라고 옆 사람한테 펼쳐 보이는 것도 이상하다. 세상엔 남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될 일도 있지만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마음의 눈치를 살피다 결국 책 한 권을 펼쳤다.

 필사를 할 만큼 아끼는 책이다.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읽어서 표지가 닳았다. 곳곳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는 그때 떠오른 느낌을 써놓았다. 빼곡한 문장을 보니 과거의 나를 만난 기분이다. 그때는 내 마음이 이랬구나, 이런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거로구나.

 무엇보다 미래의 나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지금의 나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과거의 내가 쌓이고 쌓여 현재의 내가 된 것이다. 나는 계속 썼지만 쓸 때마다 힘들었다. 만족할만한 작품이 안 나올 때는 엉덩이가 덜 아픈 경우가 많았다. 이게 나의 한계야. 더는 견딜 수 없어, 비명이 터질 때쯤 괜찮다 싶은 작품이 나왔다.

 책장과 컴퓨터, 낡은 메모장에 쓰인 문장이 그걸 말해주었다. 책 속지 첫 장에 이런 문장이 적혔다. ‘살아 있는 날의 마지막’ 그 비슷한 제목의 책이 한창 쏟아져 나올 때가 그쯤이었던 것 같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란 문장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져 그때의 절박한 심정이 읽혔다.

 나는 계속 옛날을 찾아 읽었다. 과거의 내가 말을 걸어오고 슬럼프에 빠진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기’ ‘마음 돌보기’ ‘기다려주기’ ‘응원하기’ 무던히 애써 온 흔적이 대견하다. 지금 내가 가진 모양과 색깔, 크기는 미래로 가면서 계속 바뀔 테지만 여백이 많은 만큼 채울 것도 많아지지 않을까.

 때때로 인적 드문 시골 정거장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냥 지금처럼 살면서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 길에 함께할 조력자는 결국 나 자신뿐이다. 수고한 과거의 나를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과 덤으로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보상으로 준비했다. 바투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시간. 달콤함과 진한 쓴맛의 오묘한 조화에 99%의 고뇌가 녹아든다. 나는 오늘 과거의 나와 차 한 잔 마셨다.

이준호 캘리.
이준호 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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