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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성곽 옆 느티나무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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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성곽 옆 느티나무는 울지 않는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07.18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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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성한 저녁시간이다. 가끔 부는 시원한 솔바람이 하루 동안 지친 마음을 달래 주려는지 오늘 따라 반갑게 불어온다. 바쁘지 않은 날은 성곽 길을 걸어야겠다고 되지 못한 꿈을 꾼 적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한 해가 훌쩍 넘어 버렸는데도 그 길을 한 번 제대로 걸어 본 적이 없다. 동경이었을까 허튼 꿈을 꾼 것일까 문득 일에 지칠 때 잠시 떠 올렸을 뿐 걷는다는 생각은 마음조차 먹기 어려웠다.

살면서 생각하니 고만한 작은 일을 실천하는데도 준비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만나는 지인과 늦은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근처 식당에서 담소를 하다가 골목길을 돌다보니 가까운 성곽길이 생각났다. 불빛이 환한 저녁 성곽 길은 작은 불빛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하다. 그런 풍광을 멀리서 보면 불빛들은 어서 오라는 듯 잔잔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어느 때는 그윽한 연인의 미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인자한 어머니의 미소처럼 다정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선뜻 가까이 그 길을 걷는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파란 잔디와 개망초 꽃이 하얗게 바람에 흔들린다. 녹음이라는 여름의 선물과 하얀 백색의 작은 꽃망울은 추억을 살살 떠올리게 한다. 여름은 깊은 초록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그저 녹음이 주는 안식과 위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뿐인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든다. 가끔은 어떤 일에 고마움을 생각하다 보면 귀결점은 그들에게 어떤 보답을 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내 스스로 자연에 대한 감사도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름이라는 계절에서 녹음이 주는 큰 수혜는 바로 우리 인간일 텐데.

무심한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삭막한 현실에서 여름이 주는 위대한 편안함을 외면하고 있었던 듯 하다.

여름에 사람들은 산과 숲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평안을 찾으려 한다. 아마도 보아도 보아도 지치지 않게 만드는 초록의 무한한 깊이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 본다.

작은 오솔길처럼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펼쳐진다. 중년의 두 남자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요즘은 연인들의 모습도 보이지만 남남 여여끼리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여성들이야 선천적 특권을 가진 듯 자연스럽게 담소를 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데 남성들이 즐겁게 산책을 하며 웃고 대화를 하는 것은 볼 때마다 생소하다. 더욱이 늦은 저녁시간에 사진을 정답게 찍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는 보기 드문 풍경으로 다가 온다.

잠시 서서 그들의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만의 사진 속에 배경으로 남지 않게 비껴서서 바라본다. 드문드문 저녁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성곽길에서 내려다보니 올해 들어 새로 개업한 까페와 식당들의 불빛에 비친 창문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그 속에 드문드문 자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겨워 보이는 것은 남다른 성곽의 풍경 때문이리라.

잠시 걸음을 옮기다가 보니 수백 년이 된듯한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고즈넉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나무벤치가 양 쪽으로 놓여져 있다. 느티나무에는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조명등 불빛이 앉아 있다. 때로는 청록색으로 때로는 다홍빛 색깔로 이리저리 변화무쌍하게 비치고 있는데 저녁이라 그런지 영험한 신령의 눈빛처럼 느껴진다.

이런 곳에서 옛날 분들은 소망을 빌었을 것이다. 순간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오랜 세월을 살아 낸 인고의 모습에서 무척 위대해 보이니 하는 말이다. 언젠가 근처 동네에서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벼락을 맞아 순식간에 쓸어져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바로 그 무렵 나는 단오축제를 한다고 해서 그 느티나무와 관련한 시를 연작으로 써서 지인들과 시화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앉아 있노라니 난생처음이라 그런지 느티나무 아래 앉는 감회가 새롭다. 과연 느티나무에는 영험함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부쩍 영험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를 굳이 말하라면 아픈 사람들도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스르르 나아진다든가, 삶에 찌들어 한탄하는 사람들이 이 곳에 오면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뀌어 진다던가 하는 것 등등. 아니면 느티나무가 오래 오래 산 것처럼 이곳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몇 십 년씩 수명이 연장된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상상과 소원이 깊어진다. 자주 와서 느티나무의 오랜 역사를 더듬어 보며 느티나무의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엿듣고 싶다.

이제 또 얼마 안 있으면 여름을 뒤로 하고 느티나무도 잎들을 떨구겠지. 잎들은 낙엽이 되어 거리를 배회할 테고 어느 일부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남겨 주리라.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한참을 앉아 있으려니 하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하얀 강아지에게도 느티나무의 축복이 있기를 빌어본다. 바람이 불어도 눈비가 와도 슬프게 울지 않는 느티나무를 그려보며 언제나 의연하게 우리 곁에 살아 있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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