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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여름날에 온 어느 철도공무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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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여름날에 온 어느 철도공무원의 편지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06.20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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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정말 사랑했던 정든 철도를 뒤로 하며 모든 분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 감사드립니다. 1988년 12월 26살의 젊은 나이로 차량분야에 입사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2년 7개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정든 철도를 뒤로하고, 또 다른 세계에서 제2막의 인생을 설계하며 행복을 꿈꾸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재직기간 동안 선·후배, 동료님들과 함께 차량분야 업무에 열정을 쏟아 부으며, 형설지공, 희로애락, 두주불사 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 입니다.

특히 2006년 강추위 속에서 차량처 모든 직원들과 덕유산 정상에서 맨몸으로 혁신을 외쳐던 일, 그 후 차량기지 모든 직원들과 함께 공사최초 경영평가 3년 연속 1위 달성, 혁신허브 최우수 소속 지정, 차량품질 컨퍼런스 1위 달성 등 많은 혁신성과를 창출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품질분임조 경진대회 대통령상 2회 수상, 품질분임조 수기공모전 전국 1위 장관상 수상, 올해의 철도차량인상, 대전광역시 내가 꿈꾸는 동구 아이디어 공모전 1위 수상 등 대·내외 공모전에서 18개의 수상실적을 낸 바 있습니다. 함께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영원한 자랑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모든 분들의 도움과 지도편달 속에서 32년여의 철도생활을 건강하게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정든 철도를 떠나지만 몸과 마음은 영원한 철도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자주 뵙겠으며,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직접 뵙고 감사드리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야 하나,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이렇게 글로서 인사드리는 것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며,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0월 00일」 어느 철도원의 명예퇴직에 즈음하여 가족 친지 및 동료들에게 보낸 서한이다.

문득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면서 느꼈던 감회가 소물소물 솟아올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직장을 자기 가정사처럼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한 그가 한 직장을 떠나는 마음은 기쁘기 보다는 불안감이 앞섰을 텐데도 의연하게 지난날을 반추하며 담담하게 인사를 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게 된다.

사실 퇴직 무렵 변변하게 주변 분들에게 인사 한 번 하지 못하고 무엇이 바쁜지 떠나온 자신이 부끄럽기다. 이후 여행 한 번 다닐 생각은 않고 곧바로 사회에 빠져 들어 허송세월을 한 모자라고 어리석은 판단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처지라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며칠 전 함께 문학을 하는 동료의 짧은 멧세지를 보고서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동료도 삼십 오년간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는데 철도원의 편지를 보고 느끼는 게 많아 막걸리를 한 잔 하자 불렀다. 횡설수설인지 몰라도 먼저 마무리한 인생선배로서 한마디는 꼭 하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그 후배는 편안한 마음으로 요즈음의 휴식을 즐기는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아주 담담하게 건강 좀 챙기고 남들이 다 맞는 백신을 맞고 제일 먼저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저 소박한 성정을 누가 막으랴. 내심 놀라며 참 잘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만나 막걸리를 한 잔 하며 “내 인생 처음으로 남자 분에게 전화를 해서 막걸리 한 잔 하자는 말을 했어요.” 라고 농담겸 운을 떼었다. 그 이유는 너무 단정하고 반듯한 모습에서 막걸리나 술을 마실 것 같지 않다는 선입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느껴진 그가 바로 전 날 지인들과 점심 먹는 자리에서 대여섯 병의 막걸리를 마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말에 도리어 천진하고도 밝게 웃는 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철도원과 동료의 앞날에 여름날 햇살처럼 강열하고 뜨거운 행복이 쭈욱 전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저녁 그는 단체 톡에 소식을 전했다. 내일 백신예방주사를 맞아 못 나온다는 협회 회원대신 자진해서 사무실에 봉사를 하러 오겠다고. 제 2의 인생은 이제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어떤 부담도 어떤 제재도 누구로부터도 받아서는 안 되리라. 그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고 소소하게 주위의 어려움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하는 삶, 바로 그것이 제 2의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문득 편지의 주인공인 철도공무원이 보낸 마지막 말에 눈길이 가며 「두주불사」란 유래를 생각해 본다.

진나라 말기 때 유방이 함양을 함락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항우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유방 군을 토벌하려 했다. 항우 군 측의 움직임을 알아챈 유방은 근위병만을 거느린 채 사과의 방문을 했다. 이렇게 하여 열린 모임이 '홍문의 만남'이란다.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 항우의 모신 범증의 지시를 받은 항장이 유방을 찌르려 했다. 유방이 위급한 처지에 있는 걸 알게 된 심복 번쾌가 방패와 칼을 들고 연회장에 뛰어들었다. 항우는 번쾌의 기상을 가상히 여겨 그에게 술을 주라 일렀다. 번쾌는 큰 잔에 술을 부어 준 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를 본 천하의 항우도 간담이 서늘해져서 "굉장한 장사로구나! 한 잔 더 하겠나?"묻자 번쾌가 대답했다.​ "죽음이야 사양하지 제가 어찌 술 몇 말을 사양하겠습니까?“

주위와 조직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친 퇴직자들에게 이런 추억 한 가지는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들이 이 시대를 사는 영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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