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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내가 사랑한 비밀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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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내가 사랑한 비밀의 엄마
  •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장
  • 승인 2021.01.24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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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장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를 신사임당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생각한지 햇수로는 족히 삼십여 년이 넘었다. 엄마는 살림하시는 어느 것 하나 허튼 것이 없으셨다. 내 마음 속의 엄마는 나에게 우상이었고 자랑거리의 대명사였다. 어릴 적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은 나를 위해 십리길도 마다 않고 허겁지겁 의원에 데려가셨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몇 번이고 죽었을까봐 부르고 또 부르던 그 목소리를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성장하여 시집을 가서도 엄마는 내 걱정을 많이 하셨고 엄마의 전철을 따라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못내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셨다. 철없는 나는 엄마가 친구였고 그저 응석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들이 더 언니 같아서 엄마 걱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 동생이 시집가는 전날 밤이었다. 밤이 으슥한데 엄마는 요리거리를 마루에 내놓고 열심히 음식 장만을 하셨다.

“엄마, 그냥 주무세요. 힘드실텐데...” 걱정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는 처음으로 친구처럼 말을 건네셨다. “아니, 그냥 잘 만들고 싶어. 네 동생이 친정에서 엄마의 마지막 음식을 먹게 되는 거잖아.” 엄마의  말씀이 찌르르 가슴에 다가와 앉았다. 내색 한 번 안하시던 엄마가 동생이 시집간다는데 왠지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늘 내 곁에 계셨고 내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생각을 하고 살아서 그랬었던 것 같다.

내가 무어라고 말하면 한 번의 거절도 하신 적이 없었기에 걱정하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들어 주실 줄 알았다. 뭉클한 무엇이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며 슬픔인지 서운함인지 싸한 전율이 지나갔다. ‘어쩌면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닐지도 몰라.’ 동생의 엄마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엄마였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휑하니 만들었다. 그 후로 세월이 가면서 엄마의 마음이 내게서 멀어지는 걸 가끔 느꼈다. 어느 땐 말씀을 나누시다가 슬그머니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시며 어디론가 가버리셔서 괜스레 슬퍼지기도 했다.

‘엄마도 사람이니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서운하실 수도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문득 문득 엄마가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엄마는 가끔 책상에 앉아 글을 쓰셨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엄마의 필체는 누가 보아도 단아하고 반듯한 정갈함이 묻어났다. 살림만 하시는 엄마가 책상 앞에 앉아서 평소에 하시지 않는 학생같은 모습으로 정성스럽게 글을 쓰시는 모습을 보면 웬지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엄마의 연세가 여든이 넘어갈 무렵 엄마가 들뜬 모습으로 전화를 하셨다. ‘명희야, 내가 한자 3급에 도전을 했는데 통과되었지 뭐냐?’ 깜짝 놀란 나에게 엄마는 자꾸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얼마나 기억이 감퇴되었는지 실험해 보느라 한자급수에 도전하셨다고 했다. 자식인 나도 그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연세가 몇인데 그 어려운 한자급수에 도전을 하시다니. 그런데 한두 해가 지난 후 또 도전을 하셔서 이번에는 2급에 합격을 하셨다. ‘참 대단한 엄마야.’ 속으로 생각을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가 이런 사람이야 라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 

엄마는 표구도 잘 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림을 그리셔서 표구를 하고 싶어하시면 엄마는 말없이 한지를 바닥에 깔고 몇 번이고 풀칠을 하셔서 깔끔하게 표구를 해 드렸다. 마치 표구사 아줌마처럼 그렇게 어디서 배우셨는지 상품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만들어 놓으셨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에는 직접 교복을 지어 입혀 주셨는데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참 훌륭하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 신사임당 같은 엄마가 얼마 전부터 냉장고 앞에서 물끄러미 서계시고 자꾸만 잃어버리는 게 많다고 걱정을 하셨다.

경로당에 가셔서 어르신 놀이에 참여하시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경로당에 가기 싫다고 하셨다. 사느라고 바쁜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은 생각도 안하고 집에 갈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돈을 달라고 해서 가져다 쓰는 일이나 하고 전화도 잘 안 받는게 일수며 그냥 친정가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런데 며칠 전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동생댁으로부터 들려왔다. 이제는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 엄마가 치매 5등급을 받으셨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손발이 떨리고 자꾸만 슬퍼지는 것이 마음이 안정이 안 되었다. 그저 눈가에 눈물이 울컥울컥 쏟아져서 혼자서 눈물을 훔칠 때가 많아졌다.

힘이 빠진 엄마의 헛헛한 얼굴과 겁이 나는 모습의 엄마가 가벼운 깃털처럼 어색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가족톡에 올라오면 저절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어졌다. 세상 사람들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전혀 감정이 동하지 않더니 내 엄마가 점점 자그마해지고 핏기가 없어지며 기억이 상실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너무나 이기적인 삶을 살아 왔음에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불효가 따로 없는 삶을 왜 나는 살았을까 자책감이 수없이 들었다. 이제 엄마는 그림을 그리거나 수를 놓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드시지 못한다. 기억은 저만치 놓아 버리고 잃어버린 삶에 대한 조각퍼즐만 줍고 계신다. 이제 점점 더 사위어 가실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마구마구 싫어진다. 동생댁이 어제는 링겔을 4병이나 영양제와 섞어서 놓아드렸다고 한다.

오늘은 엄마의 대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서 검진을 다시 하셨다고도 했다. 자궁쪽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엄마가 평소에 늘 하시는 말씀이 뇌리를 스쳐갔다. 너희들한테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시던 모습이 확장되어 떠올려졌다. 엄마의 희망이 왜 이렇게 아프게 느껴지는 걸까. 차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는 나를 발견했다.

기도 중에 이 세상의 엄마들을 위해 세상 다 하는 그 날까지 정신만은 놓지 말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함께 드리고 있었다. 진작 철이 났어야지 스스로 자책의 반성을 하며 아무리 바빠도 이 번 주말에는 엄마를 꼭 뵈러 가서 정말로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했다는 말을 기억을 잃으시기 전에 꼭 들려 드려야곘다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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