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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묵음의 추억 속 그리운 사촌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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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묵음의 추억 속 그리운 사촌언니
  •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장
  • 승인 2020.12.14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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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장
장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장

세모가 다가오는 겨울 한복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데 마음 한 편에 마른 잎 하나 후르륵 떨어진다. 안개 같은 부유물이 자꾸만 눈앞을 어지럽힌다. 문득 허공에서 팔랑거리는 사촌 순희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목젖을 적시며 뇌리를 향해 바삐 달려간다.

“언니, 옛날에 저하고 눈길을 걸어가던 생각 나세요?”

나는 종종 언니의 그림자를 찾아 방황하는 마음을 야생 밖으로 내몬다. 추억일까 기억이었을까 언니와 나는 늘 그 시간 그 자리에 흑백 필름으로 정지돼 있다. 아마도 여섯 살 겨울이었을 것이다.

“사과 과수원 하는 오빠 있는데 언니랑 같이 가자.”

머리를 양갈래로 곱게 따서 내려 주고는 새로 산 예쁜 옷을 입혀 주었다. 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 손을 잡고 눈이 오는 길가로 나섰다. 하얀 눈이 쌓인 거리는 시린 풍경 그대로 미끄러운 빙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언니는 나 보다 더 조심조심 눈길을 걸으며 옷깃을 여며 세우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보니까 넘어지면 안 돼.”

어린 마음에 지나치게 조심하는 언니가 나보다도 더 걱정이 되었는데 그 순간 누가 밀어버린 것처럼 주루룩 언니는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깜짝 놀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리고 쩔쩔 매는데 멀리서 언니뻘 되는 청년들이 말을 걸어 왔다.

“얼른 가서 일으켜 드려. 미끄럽겠는걸. 다치지 않았나 살펴 봐요”

아마도 언니는 넘어지기 전 그 청년들을 보고 넘어지면 부끄러울까 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그만 미끄러진 것 같았다.

겨울이면 낙상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너무 신경을 쓰고 걸어가다 보면 도리어 잘 넘어진다. 언니는 간신히 일어나서도 ‘넘어지면 안 되는데’ 하며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언니와 나는 눈이 오는 관계로 차가 다니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한 시간 가량 걸어서 간신히 과수원 오빠네 집을 찾아갔다.

과수원 오빠는 빨간 물감을 탄 것처럼 고운 색깔의 사과를 한 바구니 내주며 찐 고구마와 함께 먹어 보라고 했다. 그 오빠네 집은 눈이 그쳐서 그런지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남양에 위치한 저택이었다. 방은 따스했고 창가에 핀 선인장 꽃이 그저 고왔다. 언니와 나는 한참을 그 곳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 언니의 나이는 스물이 좀 넘었었는데 나는 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언니가 눈길에서 넘어진 생각과 과수원의 빨간 사과, 찐 고구마를 먹던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세월이 흘러 생각하니 언니는 그 오빠와 결혼을 한 것 같다. 결혼 무렵에 언니와 형부는 동성동본이라 안 된다고 집안에서 반대를 한 것 같은데 언니의 완강한 고집 때문에 멀리 이사가서 산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던 것 같다.

멀리 시집을 간 뒤 언니는 만날 수 없었고 나도 결혼을 해서 자식을 성가시키고 난 후에야 칠순이 훨씬 넘은 언니를 만났다.

내 마음 속에는 언니가 늘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이유 중 하나가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둘째인 우리 아버지가 조카를 극진히 아끼는데도 있었지만 우리 어머니를 언니가 너무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를 뵈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하며 어머니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잘 듣는 언니 이야기를 귀 건너서 많이 들었다. 공부하기가 싫다고 하며 방황을 많이 할 때 어머니가 마음을 잘 달래 주신 것 같다.

언니는 결혼해서 딸만 둘 낳았는데 한 아이가 심한 다운증후군으로 장애가 있었다.
한 번은 언니네 집에 갔는데 뱃짓장처럼 하얀 얼굴에 천진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아무 근심이 없으면 저리도 밝아지는구나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라고 물어보니 먼 시골로 내려가서 살던 중 어느 해는 수해가 나서 집을 몽땅 잃어버린 적도 있었고 어느 해는 형부의 사업이 망해서 근근히 끼니를 꾸려 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형부가 사 놓은 산자락에 심은 매실나무가 잘 자라서 그 덕분에 생활을 할 수가 있다고 했다. 언니의 집은 조그만 궁전 같았다. 형부가 외국여행을 하면서 수집한 물건들과 언니가 작가로 등단하면서 써 놓은 작품들을 전시관처럼 꾸며서 사람들에게 관란을 시켜 주기까지 할 정도였다. 나는 늘 언니가 자랑스러웠다. 그 이유는 작은 아버지인 우리 아버지를 극진히 잘 모시고 작은 어머니인 우리 어머니를 친 어머니처럼 모셔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언니의 집에서 가장 최적의 온도에 담은 매실차를 먹으며 조그마했던 어린 사촌동생이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 볼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저녁으로 삶은 감자와 몸에 맞는 약차를 곁들여 먹으며 건강을 챙기시는 사촌언니 내외 노부부의 모습을 본다. 소박하며 절제하는 삶 속에서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이 일어남을 느낀다. 아마도 젊은 날 연애시절 함께 했던 내 모습 뒤에 어린시절 풋사랑을 기억하는지 눈시울이 젖어드는 언니내외를 보며 쏜살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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