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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정적의 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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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정적의 소리를 찾아서
  • 김애자 시인
  • 승인 2020.11.30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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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자 시인

내게는 해마다 찾아가는 마음의 쉼터가 있다.

사람의 감성은 멈추어있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가 처한 상태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때론 희망적이거나 절망적일 수도 있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혹은 증오나 열정에 함몰되기도 하여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로부터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일컬어왔던 것은 생활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발생하고 구전되어온 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힘들거나 슬프거나 노엽거나 혹은 기쁠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감정의 기복을 겪을 때는 편안한 안식처를 찾아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거나 좋은 감정을 더 깊이 향유하고 싶은 바램을 가져보기도 한다.

20년 전쯤의 어느 날, 작고 호젓해서 인상적이라는 산사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어서 지그재그로 된 진입로도 좁고 울퉁불퉁하여 마주오는 차량을 만날까 염려되던 곳이었다. 일찍 출발을 하였기에 아침 기운도 채 걷히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을 했는데, 보통 가정집 앞마당처럼 자그마한 사각형의 대웅전 뜰에서 처음 만난 것은 마당에 남아있던 정갈한 싸리비 자국이었다.

고요했다. 인적도 없었다. 옷깃을 여미며 툇마루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물아일체가 되는 순간, 문득 찌~ 하는 느낌의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만나는 정적의 소리였다. 미동도 않고 얼마를 앉아 있었는지...... 그 후로 그곳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순수한 기쁨에 잠겼던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위로를 받곤 했다.

파란 자작나무 숲
파란 자작나무 숲

올해도 가을 깊은 11월 초의 어느 날, 그곳을 찾아갔다.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고요, 그 정적 속에서 마음을 정화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사하촌 상가들의 잡다한 소음이 일시에 사라지고 인적없는 산길은 잘 왔다고 마음을 다독이는 듯했다. 계곡을 오르자면 투명한 물소리는 찌든 마음을 깨끗이 씻어줄 테고, 노송 우거진 깊은 숲길을 천천히 오르노라면 세파에 시달려 굳어있던 마음도 시나브로 열릴 것이다. 물고기 유유히 헤엄치는 긴 연못, 아슬한 외나무다리를 아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건너면 기품있는 배롱나무의 우아한 자태도 만나게 되겠지. 가파른 계단을 힘주어 오르면 너무 큰 느낌의 현판도 여전할 테고, 벚나무 곁을 지나 작고 낮은 해탈문을 들어서면 온몸을 휘감아 도는 듯한 산사의 고즈넉함도 만나게 되겠구나. 찌~ 하며 귓속을 울리던 정적의 소리에 말없이 옷깃을 여미며 두 손을 모으던 옛날의 그 감성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작은 설렘이 일었다.

그러나, 연못은 화분에 심겨진 국화꽃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국화화분은 사찰 구석구석에 빈틈없이 진열되어 발 디딜 틈도 없이 화려한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국화전시회였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 고요는, 내적 상처를 쓰다듬어주던 평화로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공격당한 민생들이 전시할 장소를 찾지 못해 망연자실할 때 자비로운 주지 스님의 배려로 자리를 옮겨 마련한 잔치일 것 같았다. 섭섭함을 달래며 곰곰 생각을 곱씹다 보니,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이 베푸시는 눈에 보이는 자비심이 아닌가! 일체유심조라더니 생각을 바꾸고 보니 정신 사납고 조악해 보이던 화분들이 사라지고 한껏 만개한 가을국화가 눈에 들어왔다. 사물이 달리 보이고 여전한 북적거림이 따뜻한 인간사로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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