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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숲속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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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숲속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 승인 2020.10.08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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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가을볕이 따스한 오후 이른 점심을 먹고 몇몇 지인과 함께 화서문 뒷길로 난 둘레길을 걸었다.

언덕은 낮아서 몇 발짝 걷다보면 성곽 윗쪽에 도달하게 된다.

고개를 쭈욱 빼고 성곽 넘어 비탈진 곳을 바라보니 억새가 무성하게 바람에 흩날린다.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은퇴 전 조건 없이 마음을 내어주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나이가 한 두 살 위인 그 선생님은 말이 없고 조용했으나 판단력과 예지력이 있었다. 하루 이틀 만나다 보니 정도 들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느낌이 좋아서 그 선생님과 온종일 붙어 다녔다.

어느 날 선생님은 길을 가다가 길옆의 건물을 가리키며 지나온 이야기와 함께 사연을 들려 주었다.

사연인즉 아파트를 짓다가 부도가 나서 전 재산을 하루 아침에 날렸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을 잃은 남편은 술이 없으면 하루도 지내질 못했고 툭하면 주먹질도 해서 함께 사는 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견디기 어려운 일을 갑자기 겼었으니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했으랴.

선생님의 우울에 가까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기피를 많이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선생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이롭지 않다고도 했고 서로의 이미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몇 해 동안 아주 친근하게 지냈다. 어느 날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해서 선생님과 가구점에 가서 가구를 사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이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가구점을 소개해 주어 기쁘게 가구를 고를 수 있었는데 사단은 그 때부터 나기 시작했다.

가구를 사고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갈 땐데 뜬금없이 가구를 산 수수료를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자기소개로 가서 가구를 싸게 샀으니 커미션을 달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일축하고 말아 버렸다. 며칠 뒤 함께 쇼핑을 하는데 이 번에는 딸이 시집가는 날 버스를 대절하라는 것이었다.

버스대절이 웬말이냐고 했더니 몇 명 갈 사람이 있으니 대절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예식장이 가까워 별 필요성을 못 느끼던 차에 그런 말을 하니 단호하게 거절을 해버렸다.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퇴직을 해서 하는 일을 찾고 있기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직장을 잡아 드리려고 애도 많이 썼다.

어느 날인가 구직서 및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하며 사무실로 찾아 왔기에 컴퓨터로 소개서를 써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의 황당한 일은 지금까지 끈적거리며 내 뇌리에 달라붙어 있다. 강의를 하려고 넓은 가방에 강의자료를 잔뜩 담아 들고 내려오는데 가방을 들어 준다고 했다.

싫다고 하는데도 굳이 들어 준다고 해서 가방을 주었더니 댓 발짝도 안 가서 뒤뚱거리며 다리를 접질렀다고 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얼른 가방을 달래서 들고 갔는데 며칠 후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친구들을 통해서 내 가방을 들어 주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보약을 안 사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었다. 다리를 다친 날 분명히 음식을 잘 하는 집에 가서 도가니탕을 사 주었는데도 그건 잊어버렸는지 치료비도 안 준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말 같지가 않아서 일축해 버렸다.

친구가 병명이 뭐냐고 물으니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했다니 더 어이가 없었다. 그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여러 번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아 서서히 선생님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문에는 파킨슨 병 같은 것이 와서 고개를 수시로 흔들고 몸도 야위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그 선생님이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며 소식을 아느냐고 물어 왔다. 햇수로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연락을 서로 못했는데 마음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치매증상과 지병인 파킨슨병이 와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게 됐다.

부쩍 선생님 생각에 갇혀 있게 되었다. 지금도 성곽을 내려다 보며 연락이 없는 그 선생님을 그리워하다니. 내 마음도 참 묘하다. 그저 선생님이 곤경에 빠졌다는 것이 안됐기만 하니 말이다. 처음 선생님을 만났던 순간처럼 가을단풍 고운 날 화서문 뒷길을 함께 걷고만 싶다.

깊어가는 가을에는 좋았던 나빴던 돌아보면 모두가 그리움이 되는 건 아닐까. 예전처럼 선생님을 만나 그간의 근황도 듣고 싶다. 이 가을에 기억은 아리다.

선생님 어디선가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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