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예보가 며칠 전부터 신경 쓰인다. 폭설이라고 했던가. 아니 봄이 오고 있는 순간에 대설도 아니고 폭설이라니. 공연히 신경이 쓰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난겨울 정말 제대로 폭설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폭설 이야기만 들어도 아찔해진다.
하얗게 내리는 눈으로 인해 느껴지는 순수, 환함, 행복감, 설레임은 폭설로 인해 피해 입은 사건들에만 집중되어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평소 알고 있던 지인이 허탈하게 말한다. 기르던 오리 만 마리가 폭설로 인해 축사가 망가지는 바람에 죽어버렸어요.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의 이야기다.
그날 저녁까지만 해도 축사 내에 난방장치는 물론 먹을 사료들을 준비해 놓고 맘 편하게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 밖에 소나무가 하얀 눈폭탄을 뒤집어쓰고 마치 설국에서 온 눈사람 모습으로 방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건 무슨 일이지? 마치 살아있는 소나무의 혼령인양 하얀 몸체를 비틀며 창문에 기대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은 분명 살아있는 소나무에서 빠져나온 또 하나의 분신이었다.
왜 그렇게 들여다보는 거야? 묻고 싶을 정도로 진지한 폭설의 뒤덮인 모습은 소나무의 팔과 다리 같아 보였는데 힘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들여다보는 모습 속에서 큰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신비하기도 하고 하늘의 거인이 집을 잃어버려 땅으로 내려 왔나 싶을 정도로 왠지 섬뜩해졌다.
갑자기 핸드폰 속에서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폭설때문에 오리 하우스가 무너지고 말았어”
깜짝 놀라 주저앉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세상이 노랬다.
‘이제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오리들이 다 죽어버리다니’ 하늘을 보며 오열할 수밖에. 얼마나 정성들여 기른 오리들인데.
한참을 망연자실 하다가 뛰어간 오리농장은 처참했다. 죽은 오리들을 다 묻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은 실로 끔찍했다. 자식 같은 오리들을 보내야 했다. 한 줌 한 줌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한 일인데 이런 낭패를 보다니. 낙심천만이었다. 갑자기 살이 벌벌 떨리고 신열이 나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가 이윽고 줄줄이 쏟아졌다.
한참을 울었더니 정신이 조금 난 것 같긴 한데 기운이 없다. 깊은 충격이 정신을 혼미하게 부추겼다.
폭설이 그렇게 왔다. 춘삼월인데, 이제는 겨울 같은 것은 없을 거라 기대하며 오리를 키웠는데, 폭설 덕분에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현실에서 심한 폭설을 제대로 마주쳤다.
자연재해란 말은 평소에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런데 너무나 섬뜩하게 재해를 경험하게 된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몰고 왔다. 그 후 병원을 다녔지만 낳지 않았다.
봄이 오는 삼월의 눈은 빨리도 사라진다. 언제 당신들을 괴롭혔느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공연히 심술을 부려 당신들을 불안하게 했다고. 그래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폭설은 무언의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쌀쌀한 바람은 아직 잦아들지 않고 있는데 마치 여기저기 폭설의 잔해를 치우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분명 안일한 내 생각일 뿐.
어서 빨리 훈훈하고 따스한 봄이 와서 힘든 세상의 모든 어깨를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