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까지 몇 년 동안 머물던 그 곳은 고근(혜석)이라 불리는 여자의 생가터 근처였다.
그녀가 떠나간 지 백년 쯤 된 것 같은데 그녀는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녀가 목적하는 삶은 오로지 자기를 구속하는 세간에 맞대응하는 절대적 자유였기 때문이리라.
무수한 손가락질과 떠들썩한 까쉽거리에서 그녀는 도리어 떳떳했고 의기양양했다. 그 시간은 얼마 안 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젊은 날, 뜨거웠던 피가 펄펄 끓을 때였다. 무수한 질타, 소문, 가정에서의 박대를 받으면서도 그녀는 담대하게 자유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즐겼다. 도리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세인들의 의식을 철저히 무시하기도 하고 비아냥거렸다. 때로는 이렇게 좋은 자유를 사람들은 겉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듯 자유의 길을 걸었다.
자기만의 글로써, 그림으로써, 사람으로써 시대를 살며 자신의 행적에 질타를 하는 그들을 도리어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마치 그들의 입줄에 오를 생각도 맞대응할 생각도 없는 것처럼 떳떳하게 생을 발산하는 그녀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녀의 행보는 아예 정신적 핍박을 받지 않는 듯 했다.
그러함으로 점점 더 그녀에 대한 압박은 공공연하게 사회의 이슈화 되었다.
분명 그녀의 시대에 가족들은 낙심하기도 하고 원망도 하며 평범하지 않은 그녀에게 미움의 번뇌를 쌓아갔을 것이리라. 그녀가 자유를 누리면 누릴수록 남편도 아이들도 그녀에게는 도리어 자유의 걸림돌이 되어갔다. 자유란 그런 것이었다. 남편을 떠나고 아이들을 떠나가며 소중한 가정을 자유란 이름의 망망한 바다위에 내던져 버렸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면서도 그녀는 떳떳하게 그 길을 갔다. 처음부터 그녀의 자유는 그렇게 살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았으리라.
만방에 절대적 자유를 인정해 버린 순간 그녀는 뜨거운 불꽃이 되어 버렸다. 그런 날들도 잠시 아쉽게도 그녀의 끓는 청춘은 흘러가고, 괴로움은 병마로 변해 버렸다. 말년에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고통도 감내해야만 했다. 결국은 거리를 헤매며 자신의 삶을 거적처럼 끌고 다녔다. 아무도 거두어 주지 않은 삶의 귀결은 처참했다. 그녀의 시대에서 외친 절절한 자유였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간 세월은 그녀가 추구한 자유의 흔적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자유로운 삶을 추앙하며 오로지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임을 만방에 고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저기서 그녀의 생적을 기록화 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생가터의 사람들은 해마다 그녀가 태어난 달을 기념하고 그녀의 생애를 돌아보며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삶을 투영해 보게 되었다. 그녀의 생애를 책으로, 그녀의 얼굴을 벽화로, 생가터를 복원하고, 심지어는 입에서 입으로 혜석거리를 만들어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으게 되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머물렀던 그 곳을 떠나면서 문득 그녀의 자유와 그녀가 그렇게 살았던, 살 수 밖에 없었던 생애 속에는 알 수 없는 배경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그 배경은 본능과 그 시대의 문화와의 괴리로부터 나왔다고 보았다. 내 의식도 변화해 갔다. 신경 쓰이는 그녀의 행위들에 대해 왠지 이해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추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끔은 내가 머물렀던 집의 문을 두드리며 안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생가터 주변은 상인들 골목이었음으로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무심했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생가터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사는 일에 바쁜 일상이었다.
가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 부산에서 경주에서 서울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무슨 명분인지 스스럼없이 길 안내를 해 주는 나를 보았다.
현 시대는 문화의식이 변했다. 굴종 없는 자유에 대한 그녀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로 붐비는 환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점점 그녀의 불꽃같은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로 늘어났고, 그녀의 생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다큐로 방송으로 기사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스스로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구석구석까지 그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했던 단순했던 사고가 어리석다고 느껴졌다. 그 곳에 머물렀던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답이었다. 그러함으로 그녀의 시대에서 힘든 날들을 견뎌가며 고초를 겪었을 그녀의 인생에 대하여 측은지심이 들게 되기도 했다. 어찌 한 인간의 삶에 대하여 어느 누구가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시대를 거부한 그녀의 선구자적 인생이 남달라 보이게 되었다.
사회는 진보한다. 척박하고 잔인하며 고약한 인간애의 결말로 끌어내린 고근이라는 그녀의 시대는 너무나 비천하고 남루한 시대였다. 이제 그녀의 진정한 자유는 저 하늘로 깃발을 흔들고 있다.
그 곳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 복잡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일들로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신기하게도 그녀가 걸어간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경험이었다. 밤새 서류를 만지다가, 또는 책을 읽다가 머리끝이 쭈뼛 서기도 했다. 정신없이 한 밤을 고스란히 새우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녀에 대한 생각은 밤하늘 고고한 달의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걸려 있게 되었다.
고근, 그녀의 자유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체험한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