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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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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 겨울 이야기
  • 이명주 수필가
  • 승인 2024.12.05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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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덕목을 가진 것이 겨울에 내리는 눈일 것이다. 그 눈으로 하여 봄부터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느리게 가거나 잠시 멈추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이 주는 신비한 은혜를 받고 사람들은 평화를 느끼고 온순해진다. 그 마음과 마음들이 전해져서 눈 내리는 겨울은 온 천지가 조용해진다. 푸짐하게 내린 눈으로 하여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산들이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참 조용한 날이다.

그 눈을 보게 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매서운 한파를 건너거나 그 가운데 있어 봐야 그 운치를 즐겨 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매뉴얼은 인생 여정에는 아예 없다.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오는 시간에서 누리고 싶은 것은 크게, 불편한 일은 맞서면서 적극적으로 해결하거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 중에 눈 내리는 계절, 겨울을 건너갈 수 있어 좋다. 눈 내리는 겨울은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가장 고고하고 품격 있는 계절이다. 먼 산에 내린 눈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좋은가.  

겨울은 농사의 힘듦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어서 특별히 좋았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감자를 심어야 한다. 그런 후에는 볍씨 파종을 해야 하고 옥수수 파종을 해야 하고 들깨를 심어야 하고 김장거리를 심어야 한다. 그런 후에도 다음 봄을 예비하는 마늘을 심어야 끝이 난다. 일년 내내 심고 수확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은혜처럼 흰 눈이 내려 쉴 수 있는 겨울이 오는 것이다. 그러면 농사짓는 일이 발목을 잡히는 겨울이 오는 것이다. 그러니 겨울은 게으른 내게 축복처럼 오는 계절이다.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정지된다. 그 정지된 시간이 무료하지 않다. 난 이곳에서 내 시간을 즐겨볼 생각이다. 겨울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1층으로 내려가서 코너를 돌면 도서관이 생긴다고 했다. 도서관에 들러 책 읽는 사람들의 대열에 나도 한 몫 끼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곳 도서관에는 어떤 종류의 책들이 들어올 것이며 어떤 표정의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종종거리며 집으로 갈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아보면 경로당이 보인다. 이제 나는 도서관보다는 경로당에 갈 나이가 되었다.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은 아주 자연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선뜻 그곳에서 보낼 시간은 낯설다. 그곳에서 만날 사람은 궁금해지지 않는다. 그냥 일별하고 다른 곳으로의 탐색을 이어간다.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 나처럼 우리 시어머니도 그랬다. 비봉면사무소에서 경로잔치를 한다고 초대장이 오면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난, 싫다. 늙은이들만 잔뜩 모여 있는데 내가 그곳엘 왜 가니?”
연세도 칠순이 넘었을 그때였다. 어머니의 그 나이를 나도 지금 좇아가고 있다. 그 나이를 낯설어하면서 허방에 발을 딛는 기분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금에야 하게 된다. 지금에서야 내가 그 나이의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파트 앞의 경로당은 눈도 맞추지 않고 지나친다. 그곳에 가면 내 또래의 친구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로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정 식구들이 좋아하는 화투를 치면서 하루를 아주 재미있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겨울 하루해가 여우 꼬리만큼 짧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시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만 주로 만나고 살아왔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라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편안했다. 내 정보를 상대방에게 오픈해서 이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서로의 작품을 읽으면서 단번에 그 사람을 알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음식으로 치면 편식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것이 애물단지 같았다. 관리비를 내야 하고 세금을 내야하고 수입은 시원찮은데 지출이 부담이었다. 그 지출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행을 떠나 좋은 호텔에서 묵는다는 생각을 해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의 전환은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나만의 공간을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주 시기에 맞추어 필요한 물건을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 조금씩 옮겼다. 남편은 이곳은 갇혀 있는 공간이라 불편하다고 했다. 

남편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던 구옥에서 한 발만 내딛으면 방죽길이 이어진다. 그 방죽길엔 오리떼 기러기떼가 날아다니는 새들 울음소리 그득한 그곳이 좋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니 그곳을 떠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을 닮아버린 그곳 사람들을 떠나기가 싫을 것이다. 이곳 오목천에서 어천역을 지나면 야목역이다. 야목역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오늘도 오매불망 남편이 버티고 있는 행정구역상 드랭이마을, 비봉이 있다.

입주를 정하고 새집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모였다. 딸과 남편과 막내아들의 생일이 차례대로 12월에 모여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날을 잡아 겨울 생일을 핑계로 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막내아들이 뭔가를 사다가 TV를 연결하고 여러 채널에 적응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다음날 아침, 비봉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남편을 찾는 술친구였다. 남편은 금세 화색이 돈다. 야목역으로 시간 맞춰 오겠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남편은 아파트를 초고속으로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나도 자유를 얻었고 남편도 자유를 얻은 날이다. 

그날 저녁에 결국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술친구를 만났으니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 지금은 남편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 주기 위해 서둘러 비봉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비봉과 오목천을 겨울과 겨울 사이를 건너는 중이다. 오늘 폭설이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폭설에 갇혀 발이 묶인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주 수필가
이명주 수필가

약력

경북 상주출생.

상주여중. 수원여고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한국문인>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수원문인협회,경기수필회원으로 활동중

백봉문학상. 경기수필작품상. 수원문인협회 작품상 수상

수필집 「먼길 돌아온 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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