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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아듀, 아버지의 석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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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아듀, 아버지의 석류꽃
  • 정명희 경기문학인협회장·경기산림문학회장
  • 승인 2024.10.10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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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시인·수필가  / 경기문학인협회장, 경기산림문학회장
정명희 시인·수필가 / 경기문학인협회장, 경기산림문학회장

   가을이 물들어 가고 있는 시간 노랗게 지고 있는 들국화를 꽃집 여주인이 정성들여 다듬고 있다. 가을을 한 잎 한 잎 다듬고 있다. 그 속엔 뭉게뭉게 피어나는 갈대의 소리가 서걱이고 빛바랜 날들의 여윈 창이 열려 있다.  
    
   살짝 엿본 꽃집 풍경에서 가을을 들여다 본다. 거리마다 뒹구는 가을풍경은 배경이 되어 꽃집의 주위를 맴돈다. 꽃집 여주인의 손끝에서 시들어가는 가을은 보기 좋게 편집되어 꽃바구니에 얹혀지고 꽃병에 담겨진다. 채색의 손길, 어쩌면 꽃집 주인은 화가일지도 모른다. 붓을 잡지 않았는데도 쓱쓱 계절을 묻혀 마음의 팔레트에 첨색과 혼색을 겸하여 생기를 돋운다.

  사람들이 가을의 쓸쓸함과 가을의 비루함과 가을의 서글픔을 이야기하며 슬어져 가는 시간들에 아쉬움을 더하고 있을 때, 사라지는 것들과의 이별은 눅눅한 습자지처럼 흐물흐물 전신을 엄습한다.

  따갑거나 천박하거나 고추냉이같은 매콤함이 아닌 저온의 미적지근함이 사방을 차지하고 있어도 꽃집에서는 꽃잎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워 따거나 잘라서 모양을 만든다. 가을이라는 명제앞에서도 꽃집은 언제나처럼 한결 같다. 꽃집의 한결같음에서 일어서는 생기와 병약한 의식들을 다듬는 정신을 배운다. 어쩌면 꽃들은 삭막하고 정신없는 들판보다 꽃집에서의 일순간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손길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청정한 물빛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리라.

  촘촘한 화분들 사이로 잘 보지 못한 석류꽃 화분이 눈에 띈다. 언제부터였을까. 저 석류꽃이 핀 계절은 아마도 여름 즈음이었을 게다. 인생으로 보면 사십에서 오십대 사이일지도. 아버지는 그보다 더 빨리 우리들이 어렸을 적부터 석류꽃을 좋아하셨다. 언제나 집 안마당엔 석류꽃이 피어났고 때로는 아버지의 안방에서 석류꽃을 볼 수 있었다. 한 해의 반이 지나고 석류는 특이하게 꽃 밑 부분의 둥근 밑둥치가 단단해지며 열매로 바뀜을 알 수 있었다.

  가을 초입에는 지다만 꽃잎과 함께 듬성듬성 석류나무에는 석류열매가 통통 여물어 보기 좋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저문 날의 시간, 연세가 구순가까이 되셨을 때에도 석류나무를 키우리라 작정하시면서 척박한 산 속 골짜기에다 석류나무를 심으셨다. 어느 핸가는 겨울 내내 석류묘판을 어루만지시며 꺾꽂이도 하시고 삽목도 하시며, 이른 봄에 석류묘목을 내다 심으려는 작업에 열중하시기도 했다.

  아버지만의 세계, 꽃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씨앗부터 삽목, 이어서 묘목을 기르는 일까지 아버지의 일생은 꽃에서 꽃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셨다. 삭풍이 몰아지는 어느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석류나무를 키우시고 난로까지 피우시며 돌보는 일에 열중하셨다. 
 몇 년 뒤에 아버지의 골짜기에서는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커다랗고 소담스런 한 개의 석류가 석류나무에 고고하게 달려 있었다.

  연세도 많으신데 그런 건 왜 키우려 하시느냐고 형제들은 싫어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그 석류가 많이 번식해서 우리 형제들이 따먹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하기도 했다.

  세월은 흐른다. 가을도 깊어진다. 이제 아버지는 스스로도 잘 크는 석류나무를 놓아두신 채 우리를 떠나 홀연히 그리움만 남겨두고 떠나가셨다. 올해는 유독 이런저런 아쉬움과 지난날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을의 자취마다 배어나는 듯하다. 그 속에 왜 유난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것인지 잠시 글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나가다 본 어느 화원의 석류화분이 가던 길을 주춤주춤 뒤돌아보게 하고.

  언젠가 아버지가 찍어 보내신 사진 속의 석류 한 알이 연상되며 자꾸만 눈시울을 붉게 한다. 창 밖에는 낙엽이 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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