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를 지나다 간조 된 갯벌을 보면 향수에 젖는다. 간만의 거리를 잴 수 없듯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도 만만치 않은데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친구들과 자주 갯벌에 드나들었다. 그 시절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클 때는 일곱 물, 또는 여덟 물때가 되면 먼바다까지 물이 빠졌다. 그러면 갯것들 잡을 시간도 많을 뿐 아니라 수확도 넉넉했다. 6킬로나 되는 바다를 향해 출발하기에 앞서 대바구니에 삶은 고구마 두세 개씩 담아 가지고 집을 나서곤 했다.
넓은 들판에 푸른 보리와 밀밭이 넘실대는 그 계절은 나에게 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보리가 자라는 논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논 게 무리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었다. 게는 맨 끝부분에 난 집게발이 클 뿐 아니라 그걸 치켜들고 나 잡아 보라는 듯 놀았다. 장난삼아 잡아 보겠다고 손발을 내밀면 그놈들은 옆걸음으로 잽싸게 도망가곤 했다. 그 재미있는 모습은 늘 웃음거리이기도 했다. 집게발 때문이었지만 나는 게를 덥석 잡지 못했다. 다만 겁만 주며 노닥거려야 했다.
제방 둑에 제비 새끼처럼 줄지어 앉아 고구마로 요기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누군가 ‘물 빠졌다.’ 외치면 둑 중턱까지 차올랐던 물은 순식간에 빠지고 갯벌 밭은 곧바로 거멓게 드러났다. 신발을 벗어 보자기에 돌돌 말아 싸서 허리춤에 매고 우리는 바짓가랑이를 최대한 올리고 갯벌로 들어갔다. 아직 다 빠지지 않는 바닷물을 자근자근 밟으며 참꼬막, 다리 조개를 잡는다.
참꼬막과 다리 조개는 숨구멍이 있다. 바닷물이 약간 남아 있을 때 숨 쉬는 모습이 보여 잡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리 조개는 개펄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신중하게 잡아 올려야 했다. 그냥 잡으면 다리가 뚝 떨어져 버린다. 조심스럽게 뽑아 올린 다리는 뚝 따서 바닷물에 헹구어 먹으면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았다. 그러다 보면 조개만 남고, 다리는 없다. 그 시절 조개는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고, 다리는 초무침을 해서 먹곤 했다.
뭐니 뭐니해도 참꼬막 잡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성숙한 언니들은 쏙 잡기에 열중했다. 나는 쏙 잡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갯벌을 발로 문지르다 보면 올록볼록 단단한 곳이 있다. 그곳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동그라미를 그리며 둑을 쌓는다. 쏙 서식지에 된장을 풀어 놓고 기다리면 칼날 같은 두 다리가 쏙 올라온다. 신호도 보내지 않고 조용히 숨어있는 곳에서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을 이용해 꼬드긴다. 그리곤 잽싸게 낚아 올려야 몸 전체를 잡을 수가 있다. 쏙 올라왔다가 쑥 내려가 버리면 두 번은 올라오지 않는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나는 몇 번 도전 했다가 손가락만 다쳤다. 그리고 올라올 때 섣불리 굴면 다리만 주고 도망을 가버린다. 나는 동시다발적으로 쏙들이 올라오면 칼날 같은 다리에 눈맞춤 하다가 놓치는 일이 허다했다. 재빠른 순발력과 요령이 필수인데 먼저 겁부터 먹으니 될 리 만무했다.
바닷물 따라가다가 물이 다 빠지면 손으로 갯벌을 휘저으면서 여러 가지를 채취했다. 피꼬막을 잡을 때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개펄에서 열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또 누군가 ‘물 들어온다.’ 외치면 일제히 종아리까지 빠진 갯벌에서 나와 민물과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로 들어선다. 갯골 물에서 우리는 잡은 꼬막과 온몸에 묻은 갯벌을 씻었다. 모래 점토질로 단단하게 되어 있는 갯골을 걸을 때는 바구니에 담긴 꼬막이 무거운 줄도 몰랐다.
해산물과 수산물 자원이 노력만 하면 참으로 넉넉했던 시절이었다. 간혹 밀물일 때 바람이 거세게 불면 갑오징어 잔 갈치 등이 따라 들어올 때도 있었다. 부모님은 그것들을 잡아다가 바지랑대에 대롱대롱 매달아 말려서 먹기도 했다. 그 풍족했던 자원은 어느 순간 이름조차 없어진 것들이 많다. 다행히 꼬막만은 순천만에서 자라고 있다. 잘 보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꼬막 먹으려 찾아간다. 우리나라 갯벌 밭에서 나는 것은 최고의 감칠맛이 난다. 오늘도 그리움과 추억이 가득한 갯벌에 마음만 담가보고 간다. 갈매기 배웅 받으며.


약력
한국문인협회 회원
화성 문인협회 5대지부장 역임
문학과 비평 회원
현) 화성 문인협회 감사
현) 경기 한국 수필가 협회 감사
현) 경기문학인협회 부회장
현) 화성시 대표 축제 추진위원
현) 문학과 문화 기획,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