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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잠귀 밝은 여름밤 뜨락에 들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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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잠귀 밝은 여름밤 뜨락에 들리는 소리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3.08.30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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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따갑다 못해 화상을 입을 것만 같은 여름 한낮을 간신히 견딘 날, 밤은 더 익어서 뭉그러진다. 훅훅 찌는 밤은 너무도 야속하여 원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얄미워지고. 속옷에 배인 땀방울들이 밤에도 무슨 할 일이 있는 양 스물스물 젖어 나오더니 이제는 참지 못하고 몇 번의 샤워를 하게 한다. 에어콘을 틀어 더위를 식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니 콧속이 말라오고 기침이 나와 문명의 이기 속에서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마른기침이 시작되고 간질거리는 피부가 신경 쓰이게 되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인 연회장이나 공연장에 가게 되면 앞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기침은 자리에 앉는 순간 거침없이 튀어나와 주위를 의식하게 한다. 살아있다는 징표라고 생각하지만 수시로 창피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주위에서는 걱정이 많이 된다고 병원에 가 보라고 한다.

추운 겨울날 이었다. 그날도 행사 관계로 연수장에 가게 되었는데 기침 때문에 도저히 겁이 나서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찾아오는 기침은 꼭 행사를 시작할 때쯤 소식도 없이 내뿜어져 안절부절하게 만들어서 아예 밖으로 나와 버릴 때가 많다. 사탕이나 물을 가지고 가 먹어보지만 기침 때문에 맛있지도 상큼하지도 않다. 한 번은 왜 뒤에서 서 있느냐고 말을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무심코 자리에 앉았다가는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번번이 기침이 나는 것을 잃어버리고 그만 자리에 앉고 말아서 그야말로 기침질을 하게 된다. 사실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약 몇 알을 지어 주시고는 우유주사나 영양주사를 맞아 보라고 하셨다. 체력이 떨어지면 그럴 수 있다고.

사실 내가 체력 이야기를 하면 의아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과체중에 배까지 나왔으니 체력운운하면 소가 다 웃을 일이 아닌가. 그래도 처방이라 생각하고 남들이 다 맞는 우유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역시나가 역시나다. 신기한 것은 보통 때는 기침이 나지 않는데 여럿이 있는 새로운 공공장소에만 들어서면 그런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에어콘을 틀고 있어도 선풍기를 틀어도 기침이 안 난다. 꼭 처음 들어 간 곳에서만 기침이 나온다. 서 있으면 나오지 않는다. 꼭 앉아야 나온다. 어쩌면 이것도 살과 관계되는 일이기도 할 텐데 잘 모르겠다.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다.

전시 관계로 한밤중에 안양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운전석에 탄 지인과 동행하니 기분이 좋다. 어디 가서 식사나 할까 생각하는데 마침 서등 화가가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 그곳은 안양 공설운동장 근처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발이 되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서등 화가는 그곳에서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그 화가에게도 남다른 열정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것도 주위를 위해 봉사하는 마인드가 탁월하다는 것을 요즈음 들어 알게 되었다. 그의 아이디어가 낙후된 그 동네를 명품 마을로 만드는 반석역할을 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사실 그는 십여 년 전부터 다리를 절고 다녔다. 아마도 뇌경색이 왔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의 다리는 말끔히 나아서 전혀 불편함 없이 산에도 다닌다. 약초를 산에 직접 가서 캐어 달이고 뿌리고 약초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고 아주 활기차게 생활을 하고 있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가 자연 치유적인 건강관리를 한 때문인 것 같다. ‘참 훌륭하다’ 그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다. 안양공설운동장 근처는 저녁인데도 은은한 꽃송이 네온등과 공설운동자 벽면에 붙은 마을안내판 그림이 이색적이다. 이날은 특히 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인사와 친절한 말씨가 서등 화가를 힘이 나게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등불이 반짝 켜졌다. 마치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가 불을 켜는 것처럼. 그 순간 내 마음에도 반짝 반짝 반딧불같은 등불이 켜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정신이 옮아 온 것처럼. 집에 돌아와 창밖을 보니 짜르르 짜르륵 별빛이 흘러 고운 레이저를 발하고 있다. 서등 화가를 만나고 난 후에 벌어진 마음의 변화라고나 할까. 후덥지고 모든 것이 끈적인다. 밤인데도 주체할 수 없이 땀을 흘리는 이 밤, 그런데도 창밖에서 흘러온 별빛들의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잠 안 오는 밤에는 홀연히 밤을 새우며 이 세상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를 채집하는 습관이 언제부턴가 생긴 것이다.

그건 어쩌면 마음속의 시일수도 노래일 수도 있는데 그 순간이 오면 밤이 저절로 새워진다는 것이다. 마치 서등 화가가 아픔을 딛고 건강하게 일어서서 그 기쁨을 세상에 돌려놓겠다고 작은 일에서부터 나누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서등 화가처럼 누군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족한 나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밤에 창문을 열고 사위의 적막한 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이는 것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 자체가 아주 행복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한 여름밤에 꿈을 꾸듯이 뜨락에 쏟아지는 별들의 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나무들의 자장가 소리와 점점 더 짙어지는 밤의 소리를 교감하며 고즈넉한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자연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소리를 내고 있는지 그 근원을 찾아 이 밤도 꿈꾸듯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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