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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라일락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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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라일락꽃 필 무렵
  •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 승인 2023.04.17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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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마음이 공연히 뒤숭숭하다. 이 걸 할까 저 걸 할까 생각하기도 벅찬 느낌이 온몸을 엄습한다. 몸도 마음도 무거워 심호흡을 해도 안정이 안 된다. 괜스레 사무실을 방문한 사람들과 실없는 농담을 하다가 무언가 제대로 할 시간을 놓쳐 버렸다. 잘 잡히지 않는 해야할 일들, 그런 시간 속에서 얼마나 나는 어디로 흘러왔던가.

한 주 일정을 보니 할 일이 겹겹이 쌓여 있다. 셋째 날 넷째 날 감사 준비, 여섯 번째 날 정관개정위원회, 일곱째 날 여덟째 날 00공원 바자회 등등. 그 다음 주로 넘어가니 산소가기, 셋 모임 그리고 또 감사. 일이라고 하면 밥먹는 일도 일이고 세수하는 일, 화장하는 일도 다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되다니. 한심한 마음이 들어 한숨을 훅 뱉는다.

몇 해 동안 조그만 사업 하나 해 보려고 여기저기 쏘다닐 적 말없이 따라와 준 이 관장이 전화를 하며 만나자고 한다. 그는 한 번도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조차도 한 적이 없다. 무척 교과서적인 남자다. 생활 자체도 어쩌면 그렇게 철저한지 그와 사는 여자는 참 편안하겠다 싶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무실로 찾아온다기에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다. 예전처럼 어디를 가서 돈을 벌 궁리를 같이하자고 오는 걸까, 아니면 그동안 한 번도 밥을 산 적이 없으니 밥 한 번 사 주려고 오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 그것도 귀찮아져 거미줄처럼 엉켜 있던 일을 하나라도 해야겠어서 자판을 두드리는데 문을 열고 그가 들어 온다.

예전에 그는 아는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서 용인 지역에 있는 몇만 평의 땅을 날렸다. 그 후에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하여 월급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줘 버리고 퇴근 후에는 식당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시내 버스비가 없다고 하며 전화를 하자 쓰린 마음을 부여잡고 식당 사장에게 가불을 해서 돈을 보내 주었다. 그는 그 일에 대해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말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월급을 아내에게서 받아 본 적이 없다고. 그 나머지는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다고 했다. 지금 그 아이들은 선생님으로, 약사로, 회사원으로 당당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처음 결혼했을 때도 머리 좋은 아이를 낳으려고 커피하나 술 한잔을 먹지 않고 부부생활을 했으며 심지어는 아이를 가지는 날까지 택일을 해서 예전 어른들이 하듯이 합방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이 공부며 행동이며 모범생으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 이과장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불현듯 스치는데 그의 얼굴을 살피니 그도 저도 아닌 듯 하여 마주 보고 앉았다. 이유인즉 밑도 끝도 없이 탄원서를 써 달라는 것이다. 딸들도 장성해서 쓸 줄 알고 본인도 쓰면 잘 쓸 것 같은데 굳이 써 달라고 들이민다. 내용인즉 자기 누이의 아들이 군대 가서 죽었는데 사망 이유가 자살이라는 것이다. 누이는 절대로 자기 아들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여자같이 곱상한 얼굴에 마음씨도 착해서 동네에서 순둥이로 이름난 아이가 군대에 가서 자살로 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군대에서 성폭행을 당해서 자살을 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상관의 모진 성품에 말도 못하고 해꼬지를 당했을지도 모르니 꼭 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진상을 알아보고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과장은 혼자 생각하기에 탄원서를 작성하는 것은 자기 혼자보다 둘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찾아왔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청탁이긴 하지만 이과장 누이의 마음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할 것 같아서 탄원서 양식에 죽은 아이의 성향을 들은대로 육하원칙에 맞게 써서 주었다. 이과장은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아이가 복무하던 부대를 찾아가 탄원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학도병이셨고 분명히 군대에 가서 다치기도 하셨는데 왜 아버지는 국가유공자가 되지 않으셨을까. 돌아가시기 얼마 전 군대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더니 아주 소상히 참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이과장의 누이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 큰 아이가 군대 갔다가 자살이라는 소식과 함께 주검으로 돌아왔으니 그 얼마나 황당하고 원통한 일인가. 세상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들 속에 쌓여 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순간 생과 사를 달리 하는 일,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된 일,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혈육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일 등은 비일비재하다. 억울하고 분개할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마음이 뒤숭숭한 날 우연찮게 찾아온 지인의 탄원서 부탁이라든지 취업소개서를 써 달라고 찾아왔던 일 들도 그중 하나다. 나를 뭘 믿고 그는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일까.

잘 가는 식당 마당에 라일락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훅 하고 들어오는 라일락 꽃향기가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하게 함은 이 또한 무슨 일인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 사연을 궤뚫어서 탄원서 하나 내보지 못한 어리석은 자식을 아버지가 어디서 보고 계시는 건 아닌지. 다시 돌아서서 한 번 더 라일락 꽃향기에 정신을 묻는다. 지인의 탄원이 잘 되길 기원하면서.

출처 : 새수원신문(http://www.newsu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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