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 서울
    Y
    21℃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22℃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H
    22℃
    미세먼지
  • 울산
    H
    20℃
    미세먼지
  • 부산
    B
    미세먼지
  • 강원
    B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23℃
    미세먼지
  • 전남
    H
    20℃
    미세먼지
  • 경북
    H
    22℃
    미세먼지
  • 경남
    H
    20℃
    미세먼지
  • 제주
    H
    17℃
    미세먼지
  • 세종
    B
    23℃
    미세먼지
[아침에 읽는 수필]뼈의 시간
상태바
[아침에 읽는 수필]뼈의 시간
  • 임수진 수필가
  • 승인 2022.09.23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목이 아팠다. 잠을 잘못 잤거나 장시간 워드 작업을 한 탓이다. 자는 동안 여러 번 뒤챘다. 그러다 목을 비튼 채 잠이 들었나 보다. 아니면 워드 작업이 원인이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모니터를 노려보며 자판을 두드렸다. 몰입되면 몇 시간이 그냥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불편해도 참았다. 그러느라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목을 뒤로 젖히거나 숙일 때, 목 돌리기를 할 때 뻐근했다. 통증도 있었다. 불쾌하고 묵직해도 무거운 머리를 어깨에 올리고 작업을 계속했다. 보통 성인의 머리 무게는 4~6킬로그램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평생 목 위에 올리고 산다. 이게 정상일 때는 무게로 여겨지지 않는데 목이나 어깨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쇳덩이다.

온찜질을 하고 마사지기로 뭉친 근육을 풀었지만, 오른팔마저 저릿했다. 결국 병원을 내원했다. 대기실은 복잡했다. 건물 안과 건물 밖의 풍경이 극과 극이다. 상공에서 내려다볼 때도 종종 이런 느낌을 받는다. 높은 곳에서 굽어본 세상은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아름답다. 고요하고 평화롭기가 지상천국이지만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세상은 시끄럽고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문을 들어서면 아픈 사람 천지다.

깁스, 목발, 허리와 목 보호대를 한 사람들이 대기실 의자에 무표정하게 앉았다.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직 이런저런 장치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의료보조 기구를 해야 할 수도 있는 한 사람이 되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목걸이, 귀고리, 반지 하신 거 있으면 다 빼시고요. 속옷 벗고 바지 갈아입으시고 티셔츠 그냥 입고 나오면 되겠습니다.”

방사선사가 탈의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시키는 대로 빼고, 벗고 갈아입고 기계 앞에 섰다. 숨 쉬고, 참고, 쉬고 참고… 목소리에 따라 호흡하며 앞, 뒤, 옆, 사선 돌아가며 몇 번을 찍었다. 목이 아픈데 뭘 이렇게 많이, 오래 찍나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에만 오면 수동적 인간이 된다.

다시 진찰실에서 주치의와 마주 앉았다. 환한 형광등 불빛에 조금 전 찍은 흑백사진이 걸렸다. 내 뼈들이 저렇게 생겼구나. 턱과 목, 늑골, 복장뼈가 선명하다. 장기와 내장지방은 보이지 않지만, 뼈를 덮고 있는 피하지방의 희미한 윤곽은 확인할 수 있었다. 주치의는 내가 아닌 내 속의 뼈와 근육을 보며 얘기를 계속했고 나 또한 주치의가 아닌 평소 볼 수 없었던 내 몸의 내밀한 조직을 살피느라 바빴다.

판독을 마친 주치의는 경추에 문제가 없고 흉추나 요추의 문제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C자 형태를 유지해야 할 목이 꼿꼿해서 일자목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물리치료와 약을 처방받은 뒤 내 몸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엑스레이 사진을 CD에 담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CD를 노트북에 넣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뼈와 바투 앉긴 처음이다.

사람의 몸은 206개의 뼈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걷고 달리고 자판을 두드리고 다리와 팔을 구부리는 단순한 동작조차도 고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70개가 넘는 해부도를 그렸다는데 나는 평생을 사용하면서 몸속 구조조차 정확히 모른다. 늑골 속 갈비뼈는 가지런하고 뒤통수부터 꼬리뼈로 이어진 등뼈는 길고 튼튼하다. 마디마디 이어지고 연결된 게 신기하다.

엑스레이에 찍히지 않은 수많은 뼈. 긴뼈, 납작뼈, 벌집뼈, 종자뼈, 해면뼈 이외에도 근육과 핏줄로 연결된 게 결국 나다. 나를 나답게 꾸며주고 증명해 보이는 실체다. 척추를 중심으로 앞쪽으로 둥글게 연결된 가슴뼈는 장기를 보호하고 꼬리뼈로 이어진 척추는 두껍고 치밀하다. 마음은 엑스레이를 찍어도 나오지 않는다. 만지고 촉감을 느끼는 몸이 없다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 보일까.

말없이, 묵묵히. 근실하게 일해온 몸도 사용 빈도가 늘고 시간이 흐르면 닳고 낡는다. 우직하게 버티더니 결국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두 팔로 어깨를 감싸안으며 몸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내 몸으로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고생한다고.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속한 공간으로 시간이 주입되고 또 흘러간다. 덧창을 열어 시선이 가는 구간을 날아가는 새들을 보듯 뼈의 시간을 더듬어 본다.


임수진 수필가
임수진 수필가

월간 『수필문학』지로 등단

현진건문학상 신인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대상

수필집 : 나는 「여전히 당신이 고프다」, 「향기 도둑」

기행수필 : 「팔공산을 걷다」

단편소설집 : 「언니 오는 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