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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운림산방(雲林山房) 그리고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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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운림산방(雲林山房) 그리고 진도
  • 장진천 소설가
  • 승인 2022.09.08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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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2박 3일 진도에 있는 남종화의 본산인 운림산방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운림산방은 진도에 자리 잡고 있다. 단아하게 가꾸어 놓은 전경이 안온한 느낌이었다. 배롱나무꽃은 그런 풍경에 화사함을 주었다. 수원문협 정명희 회장과 사무국 일행들이 의기투합하여 자동차로 5시간 걸리는 곳을 운전하고 다녀왔다. 수원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고 거리였다. 내비게이션에서는 운림산방에 가는 거리를 313km라고 나왔다. 일단은 들이대고 보는 성격이고 보면 겁도 없이 갔다 온 듯하였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 대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1809-1892)이 기거하던 곳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남종화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면 화풍에 대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역을 남북으로 나눠 부른 남종화 북종화는 자료를 찾아보니 명나라 말기에 당나라 시대에 불교의 한 파인 선종禪宗의 남북분파에 착안해 산수화를 출신과 성분과 그리고 화풍에 따라 남북으로 구분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이를 남종문인화라고도 한다. 문인들이 여과 활동으로 비직업적으로 수묵과 옅은 담묵채를 써서 내면세계의 표출에 치중하고, 서정적이며 사의적인 측면을 중시해서 그린 품격 높은 그림을 가리킨다. 좀 더 자료를 보면 중국 명·청 시대에는 남종화가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북종화’가 외형을 위주로 한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였다면 ‘남종화’는 작가의 내적 심경 즉 사물의 형태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내용이나 정신이 드러나게 그리는 화법에 중점을 두었던 화풍의 차이가 있다

이런 사조가 조선조에는 17세기 전반기에 유입되어 일부 문인화가들에 의해 소개되다가 1700년경 윤두서 · 정선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후 심사정 · 강세황 등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화단의 주도적인 화풍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간략하면서도 거칠고 강렬한 토착적인 경향을 심화시키면서 점차 형식화되었는데, 19세기 전반기에 추사 김정희는 본래의 문인화적 정신을 회복할 것을 강조했다.

이런 화풍이 근대에 주로 호남지방 화단을 중심으로 전통이 이어졌다. 그래서 남종화라 한다. 그런 중심에 서 있는 화가가 소치 허련許鍊(1808-1892)이다. 소치가 만난 스승으로 시서화다詩書畵茶 사절四絶이라 불리었던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가 있고.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초의선사 제자인 소치 허련이 말년에 귀향하여 작품 활동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 운림산방이다. 그래서 운림산방이 남종화의 산실로 일컬어지고 있다.

여기서 ‘소치’라는 호를 추사 선생으로부터 소치小癡’라는 아호는 스승인 김정희가 내려주었는데, 원나라 때 화단의 대가였던 대치도인大癡道人 황공망黃公望(1269-1354년)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니 조선의 황공망이 되라고 하여 직접 지어준 것이다. 후에 추사는 소치의 화재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라고 극찬하였다. 소치의 ‘치癡’는 치매癡呆라고 할 때의 ‘치’자로서 ‘어리석다, 미치다’라는 말이다. 지능이 대뇌의 질환으로 저하된 것으로 노년에 이르면 나타나는 것으로 병들었다는 의미로 ‘치痴’ 자로 쓰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호에 어리석다는 의미의 ‘우愚’ 자나 ‘치癡’ 자를 쓰는 것은 대단한 반어적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이 어리석은 자임을 크게 깨달았으니’ 이는 뒤집어 말하면 자신이 현자임을 암시하는 역설적 의미도 담겨있다는 셈이다. 소치가 젊은 날에 초의선사와 평생 스승인 추사를 만나 받은 서화 공부는 그를 시 서 화에 능한 3절로 거듭났다.

운림산방이 자리 잡은 곳은 첨찰산(尖察山 해발 482m)이 주봉으로 주위의 여러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운림산방’이란 당호가 바로 그러한 산수화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운림산방은 1대 ‘소치 허련’, 2대 ‘미산米山 허형許灐(1862-1938)’, 3대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 ’으로 이어지며 4대 ‘임전 허문’ 그리고 5대 ‘동원 허은’이 대를 잇고 있다. 한 집안 직계 5대에 이르는 가문의 화가의 길로 매진하고, 화맥이 20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할 수 있다.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라 한다. 보배스런 섬이란 뜻으로 보배 진珍자를 써서 진도라고 하였다. 그런 진도에 가면 세 가지를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글씨(書), 그림(畵), 그리고 노래(民謠)가 그것이다. 글과 그림은 알 수 있는 것은 운림산방이 있기에 가능하리라 여긴다. 노래는 진도아리랑이 있고 강강술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진도는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경지가 많고,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또한 진도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제시하는 장이기도 하다. 삼별초의 항몽유적지인 남도산성. 용장산성이 있으며, 삼별초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고려 현종 8대손 승화후 왕온(王蘊?-1271) 묘지가 쓸쓸하게 있다. 왕온을 따라 나섰던 궁녀와 부하들의 슬픈 사연이 깃든 둠벙(웅덩이 방언)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 마치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때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하고 비슷하였다. 이 비장한 죽음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이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의 성지인 울돌목의 물살을 굽어보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를 마시니 한 여름이 다 간 듯하였다. 일몰이 유명한 세방낙조에서 바라보는 진도 바다는 황홀함을 주었다. 김해 출신 모 시인은 이런 광경을 보고 진도 앞 바다는 극락이라고 하였다. 다시 시간이 된다면 그때는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장진천 소설가

약력

o 「문학과 비평」 소설 부분 신인상

o 「문학광장」 시 부분 신인상으로 등단

o 한국문인협회회원/경기문학인협회회원/수원문인협회회원/황금찬시맥회회원

o 시집: 아이리시 커피, 외 다수 수원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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