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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칼럼] 정몽주선생의 선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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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칼럼] 정몽주선생의 선비정신
  •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 승인 2022.04.28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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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요즘 모 방송국에서 주말에 방영되는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피비린내를 먹고 태어난 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현대적 사고로 재조명되고 있다. 왕권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의 전쟁을 불사하고 형제간 살육을 일삼는 당시의 윤리와 도덕에 대하여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고려 후반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부패하고 무능한 왕국이었다. 무신정권의 등장과 몽고의 간섭기를 거치며 나라는 극도로 쇠락하였고 권문세력의 발호로 민심은 흉흉해지며 백성들은 곤궁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런 어수선한 정국을 틈타 조선 개국의 시조인 이성계는 고려 말 충신인 최영 장군을 제거 하고 위화도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회군을 한다. 말이 역성혁명이지 사실상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비합법적 왕권 찬탈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쇄락한 고려가 동정을 받는 것은 절개 곧은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목은 이색선생과 포은 정몽주선생 그리고 야은 길재선생이 있었는데 이들을 고려삼은(高麗三隱)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들 중 이색선생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군령위반죄로 단언하고 왕의 명령을 거역한 행위라 했으며, 정몽주선생은 훗날 조선 3대 임금이 된 이방원의 쿠데타 합리성을 주장하는 회유에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길재선생 역시 위화도 회군 이후 새 왕조와 등을 지며 "몸은 비록 남다를 바 없다마는 뜻은 백이(伯夷)·숙제(叔齊)처럼 마치고 싶구나"라는 시를 남기고 낙향하여 연로한 어머니를 봉양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선비정신은 아마도 고려 말에서 조선초로 전환하는 시기에 나약한 고려왕조이지만 정통성을 지닌 왕위를 위해 의리와 절의를 지킨다는 뜻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비가 지향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눈앞에 펼쳐지는 이익을 기피하고 인간이 갖고 있는 윤리를 기반으로 한 신의(信義)라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서는 세조의 찬위야욕에 희생양이 되었던 단종임금을 위해 끝까지 신의와 절의를 지켰던 사육신과 생육신은 또 하나의 선비정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몽주선생은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에 맞서 단심가로 화답함으로써 그의 굳은 절개를 확인해주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정몽주 선생은 고려 충숙왕 때 뛰어난 외교가이며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은 고려 말 충신이다. 1367년 성균박사에 임명돼 당시 고려삼은 중의 한 사람인 이색으로부터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았다. 고려 말 정도전·조준 등이 신흥세력인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여 공양왕 4년인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 등의 습격을 받고 순절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3대 임금인 태종은 신하로서 충절을 지킨 공을 높이 평가 사면했다. 이에 1401년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묘를 옮기던 중 그 행렬이 지금의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고인의 이름과 관직이 기재된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 묘소인 용인시 처인구 능원리에 떨어져 이곳에 안장하였다

묘역 입구의 왼편에 신도비가 있는데 1696년(숙종 22)에 건립된 것으로, 송시열이 찬(撰)하고 김수항이 글을 썼으며,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을 예찬하는 문장이라 한다. 정몽주는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유학을 진흥하고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로까지 추대되었다 한다.

정몽주 선생 묘소는 수원을 기준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휴일을 이용,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느끼게 하는 방안이다. 아울러 묘원에 설치된 정몽주 선생의 유명한 <단심가>와 <백로가>를 읊어 주고 옛 충신의 기개와 삶의 정도를 체험시키는 것은 어쩌면 윤리의식이 점차 퇴색되는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몽주선생의 선비정신이 새삼 그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자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궁박하게 살아가는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과 정파만의 이익을 위해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 혹여 국민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익에 밝은 소인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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