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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사랑하기, 나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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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사랑하기, 나와의 약속
  • 채찬석 수필가
  • 승인 2022.02.04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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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찬석 시인, 1956년 전북 군산 출생.  교육수필가, 세창고시학원 강사, 수원문협․ 군포문협 회원, 전 연무중학교 교장,수필집 발간, 『나는 사람을 발견한다』외 3권, 2017년 자랑스런 수원문학인상 수상
채찬석 시인, 1956년 전북 군산 출생. 교육수필가, 세창고시학원 강사, 수원문협․ 군포문협 회원, 전 연무중학교 교장,수필집 발간, 『나는 사람을 발견한다』외 3권, 2017년 자랑스런 수원문학인상 수상

나이 만 66세.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수명인 77세까지 산다면 11년이 남았다. 아파서 1년쯤 병원 신세를 지거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런 점을 감안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은 아마 10년쯤 될 것 같다. 지나간 60년도 잠시였으니 10년이란 세월은 인생을 즐기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며칠 전 속옷에 혈뇨가 약간 비친 적이 있어 비뇨기과에 갔다. 의사가 검진을 하더니 전립선 비대증이 심하고 전립선에 염증이 있어 암 검진을 해봐야겠단다. CT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전립선이 정상인보다 두 배나 크고 염증까지 있어 피 검사를 해야 한다며 피를 뽑자고 했다. 검진 결과는 사흘 뒤에 나온단다.

아! 암이면 어쩌나. 전립선이 정상인보다 두 배나 크고 염증까지 있다니, 아무래도 불길했다. 사흘을 기다리는데 벼라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진즉 진단을 받았어야 암을 초기에 발견하는 건데…, 암의 증세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잦은 요의, 빈뇨, 혈뇨는 전립선암의 증세라고 나왔다. 내가 겪고 있는 증세와 일치했다. 그러니 만약 전립선암이라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짐작되어 몹시 걱정이 되었다. 의사는, 진작 진료했으면 비대증도 줄일 수 있고, 암이라 해도 초기에 발견하여 완치가 용이했을 거라고했다.

전립선 비대증이 있다는 건 이미 10년 전에 알았다.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그때는 전립선이 약간 크니 주의하라고 했다. 비대증을 치료할 특효 약이 없으므로 더 심해지면 나중에 수술하는 수밖에 없는데, 수술해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오줌이 자주 마렵다니 잦은 배설을 감소시키는 약을 처방해 주어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1~2 년 전부터는 그 증세가 심해졌다.

20년 전, 공무원 건강 정기검진 시, 간염 보균자로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도 간염에 전염되었을지 모르니 모두 나와서 검진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내가 진즉 B형 간염검사를 받고 예방주사를 맞았어야 했는데 때를 놓친 것이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하여 간염을 예방했는데 왜 나는 미루기만 하다 간염에 걸렸을까? 자신이 바보스러워 원망스러웠다. 더구나 나는 당뇨 증세가 있어 혈당 약을 먹고 있어 간염까지 걸렸으니 진퇴난망이었다. 당뇨는 혈당 조절을 위해 음식물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데, 간염 치료를 위해서는 영양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을 많이 먹기도, 적게 먹기도 곤란하여 식생활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간염 진단 결과를 알게 되어, 미리 대처하지 못한 후회를 했다. 아내에게 그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이 되어 거실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간염에 걸린 것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외식과 술을 자주했던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 때문에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전염되었다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아내에게 사정을 말하고 당신과 아이들, 모두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남들은 대부분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나는 미적거리다 예방 주사도 맞지 않아 그리 되었다. 똑똑한 체하고 살았는데 실제로는 바보였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또, 가족들에게 전염이 되지 않도록 밥을 따로 먹어야 하고 그릇도, 세면도, 수건도 모두 따로 써야 한다고 말하는데…. 목이 콱 막혔다. 그러자 아내도 숙연해져서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검사를 제대로 받아봐야 알지요. 오진도 있잖아요.”

라고 말했다.

“미안해요. 이제 남은 생애. 가족들을 위해 살게요.”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그때 내 마음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하느님이 간염을 낫게 해 준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야지.’

날을 꼬박 세우고 아침에 가족들을 데리고 검진하러 가는데 마음이 너무 착잡해서 웃을 수도, 어떤 말도 꺼내기 어려웠다. 다행히 검진 결과, 가족들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병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가깝게 지내는 몇 분에게 사실을 말하고 함께 식사도, 대화도 피하겠다고 사정을 말했더니, 어떤 분은 곰쓸개가 간에 좋다며 자기 집의 냉장고에 보관하던 쓸개를 조금 떼어주었다. 어떤 친구는 매일 운동을 하라고 줄넘기를 사다 주었다.

그 후, 아내는 식사할 때마다 내 밥과 음식을 따로 주었다. 수건도 따로 쓰고 잠도 따로 잤다. 학교 출근할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혼자 먹었고, 컵도 내 컵을 따로 썼다. 직원들과 회식도 피했다. 간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운동에 힘쓰고, 피로하지 않으려 휴식에도 공을 들였다. 우울한 나날이었다.

6개월 후쯤, 혹시 몰라서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간호사는 정말 보균 판정을 받았느냐고 재질문하더니 보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으니 보건소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으라 했다. 어쩌면 공무원 건강검진 병원에서 오진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간호사의 말처럼, 보균자였지만 자연 치유가 되는 과정에서 항체의 형성이 나타나지 않아 보균자로 판정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보균자가 아니라니 간염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했던 약속, 가족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은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 전립선암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과 같은 헛된 약속으로 하느님에게 건강을 빌지 않았다. 더구나 기독교인도 아닌데 하느님에게 매달릴 염치가 없었다. 제발 암이 아닌 행운이길 기원했다.

피 검사 사흘 뒤, 검진 결과를 문의하니 암이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혈액 수치도 정상에 가깝다며 전립선염과 전립선 비대증만 치료하면 되겠다고 했다. 천만 다행이다.

올 설날,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에 충격이 컸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며칠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에게 폐암이 있었다고 한다. 작고 직후에 유족이 부고를 알리지 않았고, 그가 병원에 입원한 일도 없었으며, 하필 설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니 아마 스스로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1년 전, 그를 만났을 때, “동창모임을 만든 당사자가 요즘은 왜 나오지 않아?” 하고 추궁하듯 물었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그냥 나가기 싫어졌어.” 하고 대답했다. 아마 그때 사실을 말하기가 싫었던가 보다. 어떤 친구가 말하길, 그의 강한 자존심은 자신의 지병을 밝히기 싫었을 거고, 다부진 성격은 극단적 선택도 감행할 수 있었을 거라 했다.

2003년, 교감 자격 연수를 받을 때 한 방에서 한 달 간 생활하던 7 명이 지금까지 20여 년 부부동반 모임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만나는 동료 7명 중 퇴직 후, 두 명이 투석을 하고 있다. 1명은 수시로 병상에 누워 지내야 하고, 3명은 혈당이나 혈압의 지병을 가지고 있다. 단 1명만 그런대로 건강이 괜찮다. 가깝게 지내던 대학 동창 한 명은 며칠 전 위암 4기의 수술을 받았고, 초중고 동창으로 인연 깊은 친구가 투석을 하고 있다. 40대 초반의 처조카는 2년 전,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 언젠가는 그렇게 갑자기 예상 못한 먼 길을 떠날 수 있다. 수명은 자기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라고 예외가 있으랴. 그래서 남은 생애를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며칠 동안 고심했다.

매일 복용하는 약의 숫자가 10개가 넘는다. 약으로 사는 것 같다. 약이 많아 약을 구분해 먹는 일조차 헷갈리는 일이 잦다. 건망증이 심하다. 그야말로 노인 증세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틀에 한 번, 공원에 나가 근력 운동기를 이용하여 운동을 하고 온다. 전에는 주로 집에서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근력운동을 했다. 그런데 최근 1~2년 동안에는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오십견이 왔는지 우측 어깨가 아파 손을 90도 이상 들 수가 없고, 오른 손으로는 목을 씻지도 못했다. 올 1월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뜨며 물리치료를 받았더니 증세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러나 온전히 낫지는 않았다. 혹시 팔 운동을 하면 나아질까 싶어 공원의 운동기구를 이용해보았다. 다행이었다. 며칠 만에 상태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두 달만 운동을 열심히 해 본 후, 낫지 않으면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을 양으로 운동에 열중했다. 그랬더니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이제는 거의 나은 것 같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했다고 여겨져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렇다. 그렇게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건강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듯 나에게 남은 생애를 의미 있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가족부터 사랑하자. 그리고 친구, 친지에게도 사랑을 베풀자. 먼저 40년을 참고 살아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그리고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자주 안부를 묻자. 친구와 친지들에게도 전화로나마 안부를 묻고, 인연 나눔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거나 장점을 칭찬해 주자. 나와 인연 나눈 사람들에게, 나를 염려해 주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내게 베풀어준 분들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자. 그것은 나와의 약속, 즉 사랑하기의 작은 실천이겠지만 떨어지기 전의 단풍잎처럼, 일몰 전의 저녁노을처럼 나에게 고운 빛을 지니도록 만들어 줄 것 같다. 나의 그 빛은 실천의 정도만큼만 고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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