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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12월의 언덕에 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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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12월의 언덕에 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12.20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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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서 있다. 그가 서 있는 길목은 가파르고 간혹 움푹 패인 웅덩이도 있다. 누군가 그의 뒤를 쫓아가며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마음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가는 것일까. 하루가 간다. 또 하루인 날들, 그렇게 몇 번의 하루를 보내고 나면 계절의 넘나듦 속에서 삶의 나이테도 여물어 간다. 무채색의 그가 지나 온 날들은 어떤 색이었을까. 살짝 지나가는 바람에게 물어 본다. 바람은 교태를 부리며 그의 주변을 훑어 내린다. 아니 빙그르르 돌며 유혹을 한다. 마치 세월을 탐닉한 듯 우쭐거리는 듯하다. 별거 아니라는 것, 그까짓 것이라는 것, 그건 세월이 아니다. 그냥 옹이일 뿐이다. 바람도 옹이가 있을까. 교태와 흔들거림, 흐느적거리는 바람. 생각은 어느 만큼의 시간 속에서 꼭 도돌이표를 되새김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는 듯이. 그를 지켜보는 한 사람도 물인 양 바람인 양 따라한다.

세상은 뒤적거리는 게 아닌가 보다. 하루를 무심히 살고 또 그런 날들을 무심히 포개며 살아갔는데 어느새 열두 달이 다 지나갔다. 분명히 무언가 호흡하고 무슨 일에는 골똘했으며 어떤 일에는 열정도 부렸더랬는데 지나보니 잡히는 게 없다. 특히 다른 어느 해보다도 부잡스럽게 움직였는데 무슨 일일까. 그래. 잡히는 게 없어도 살아진 거다. 아니 살아 버린거다. 이 쯤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게 잘 살고 잘 살아 진거냐고.

눈발이 하나 둘 날리는 날엔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길을 나선다. 약간의 나지막한 산을 넘어서 삭풍을 뒤로 하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밀치고 이미 낙엽의 잔해로 덮혀진 길을 걷는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휘감는 바람의 머리채와 이따금 후두둑 떨어지는 마른 도토리나무들의 이야기 소리 밖에는.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소리는 구름 사이로 내다보이는 하얀 달빛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몇 년 묵은 신음 소리 같은 것이다. 들리지도 않는 신음 소리는 그의 귓 속에 자리잡고 있다. 간 혹 사위가 적막하여 침묵의 무게가 두터워 질 때 약간의 무서움과 외로움이 반 반 섞인 순간에 귓 속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단말마 같은 비명소리 같은 것. 몸이 움찔거리며 무게중심을 잡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그 소리는 더욱 처절하다.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비실비실 걷고 있다. 아무런 주저함도 없다. 그래야만 하는 것은 자기만의 약속이며 짓눌린 책임감에서 벗어나고픈 소망에서 비롯된다.

그가 불현 듯 길을 걷는 것은 아마도 이십여 년은 족히 됐을 것이다. 어느 날 그의 가슴이 쥐어짜듯이 통증을 호소할 무렵 그는 심장병에 걸린 줄 알았다. 어쩌면 얼마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절부절 못 했다. 병원에서는 이리저리 진찰을 해 봐도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데 병에 대한 강박관념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부터 그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한 밤 중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심장을 쥐어뜯을 것처럼 조여 오는 통증을 물리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가기를 밥 먹듯이 했다. 급기야는 직장조차 나갈 수 없어 명예퇴직을 해 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정도로 밤낮으로 나타나는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서 아예 집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야밤에 산을 오르내리기를 수천 번, 땀이 뒤범벅이 되기를 수천 번,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극기훈련과 산에 오르고 내리는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기를 해수로 십여 년, 서서히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 부터였다. 그의 귀는 열리고 그의 심장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통한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잡티 하나 없이 고결해지고 진부한 일상에서 내려놓은 무수한 비늘들은 그의 의식 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가장 쉬운 것은 모든 걸 내려 놓는 연습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내려놓기 힘들었던 허욕을 깨달은 것일까. 점점 더 그의 눈은 광채가 났고 그의 몸은 도인의 몸처럼 말랑해지고 가벼워 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오늘도 산에 오른다. 세월의 언덕을 오르고 올라 어느새 초로가 되어 희끗희끗한 머리로 묵묵히 길은 간다.

이제 또 한 해가 저문다. 그의 마음도 한소끔 쉬어가려나. 저기 먼 곳으로부터 조금씩 불어 오는 바람, 차라리 따사롭기까지 한 바람이 이 겨울에 불어온다. 그는 알고 있다. 아무리 혹독한 바람도 아무리 살벌한 바람도 삭풍을 에이는 바람마저도 그의 앞에서는 따스한 훈풍이 된다는 것을.

그의 곁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묵묵히 그리고 물끄러미. 동시에 그와 그 사람이 말한다.

올 한해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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