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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수원문단의 “김애자 시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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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수원문단의 “김애자 시인”을 만나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11.19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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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가을 끝자락이 길어지니 해 그림자도 따라서 길어져 가고 있다. 몇 번의 비가 오고 가더니 제법 쌀쌀한 날씨가 겨울이 오려는지 매몰차다. 연무대에서 행궁광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탈져 올라 갈 때는 힘이 제법 든다. 그 경사로를 따라 은행나무 샛노란 모습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데는 손색이 없다. 시에서 동글동글하게 서둘러 전지한 탓인지 둥근 곡선이 아름답고 부드러워 경탄을 할 때가 많다.
 내려오면서 박물관을 휘익 둘러보고 눈길을 준다. 잘 있느냐 잘 있었느냐의 짧은 묵언으로 눈인사를 하는 것은 아마도 박물관이 주는 깊고 묵직한 역사성을 대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도 수원의 한 면목이다. 요즈음 수원은 급속도로 변모해 가고 있다. 행궁동만 해도 얼마전 까지 보이지 않던 까페들이 줄줄이 늘어서고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침 시인이며 수필가이신 수원 여류문인 김애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그 분의 문단인생을 듣게 되었다.
 김애자 시인은 1989년 수필로 등단을 하셨는데 그 후 12년이 지나 2001년에 시로 등단을 하셨다. 그 후 6년이 지난 뒤 시조로 2017년에 등단하셨단다. 등단처도 다 다르니 나지막하게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등단배경을 굳이 여쭙자면 수필은 지인의 권유를 받아 1986년 제물포수필문학회에 입회. 동인 활동을 하던 중 『시대문학』에서 공모한 신인상에 당선하여 수필로 등단했다고 한다.
 이어서 『예술세계』 신인상 공모에 당선하여 시 부문으로 등단을 한 후 『시조시학』으로 시조부문에 등단했다.
 열정이 남다르신 모습이 아름답다. 등단과정의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원문인협회의 가입 동기와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으로 들어간다. 그 분의 족적이다.
 김애자 수필가는 1989년 수필문학으로 등단한 후 수원문인협회의 전신이라 할 『경기문학』에 1990년 초 입회하였다. 그 후 1990년 『경기문학』 제11집에 숫자세기 외 1편을 발표하면서 수원지역 문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1년, 내 작품 ‘헤어지기 위하여’ 외 1편과, 사고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故정운엽시인 추모특집’을 수록했던 제12집을 끝으로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의 이름으로 발간되던 『경기문학』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원지역 문학의 새로운 기수로 떠오른 임병호 시인을 주축으로 새로운 이름의 문학단체가 탄생하였다. 당시 신문사의 문화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초대 회장이 된 임병호 시인은 유사 단체의 발흥을 염려하여 ‘한국문인협회수원지부’의 명칭과 함께 ‘수원문인협회’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한다는 내용을 자신이 근무하는 경기일보에 게재하여 명칭 사용에 걸림돌이 생길 여지를 애초에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 이후 수원문인협회는 1992년 『수원문학』 창간호를 시작으로 이 지역 문학의 기수로서 회지를 연간집에서 차츰 계간집으로 발간하며 현재 회지 58호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함께한 수원문단의 초기 역사를 잠시나마 듣게 되어 행복했다.
 김애자 선생님의 수원지역 문인협회와의 인연은 이렇게 1990년 봄부터 시작되었다. 수원문인협회가 결성되기 전 『경기문학』 연간집에 작품발표를 시작으로 그 이듬해인 1991년까지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 회원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한국교육신문> 칼럼을 한 달 동안 집필하며 그 일을 시작으로 <경기일보>의 칼럼 ‘솔대골’을 3개월간 집필하는 등 문학과 관련된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1992년 <수원문인협회>가 창간된 후에는 회장님의 명을 받아 ‘水原文學’의 제호를 휘호하여 책표지에 썼다. 이것은 회장이 바뀌어 제호를 다른 형태로 바꿀 때까지, 그러니까 창간호부터 제5호까지 5년간 사용되었다.
 창립 초기 연간집에 낼 작품들은 혼자서 교정을 보곤 했다고 한다. 200자 원고지에 자필로 글을 써서 제출하곤 했는데, 육필원고를 교정을 보는 일은 힘들었다고 한다.
 듣고 싶은 말씀은 차후로 돌리고 김애자 선생님의 시조를 지면을 만나 뵈며 깊어가는 가을 수원의 여류시인의 시조 한편 감상해 본다.

 



<시조> : 바지랑대

바지랑대

대가족 벗은 옷들 손으로 비벼 빨아
꼭꼭 짜서 양지바른 앞마당에 널고 나면
그 무게 혼자 못 이겨 늘어지던 빨랫줄

장대 끝에 대못 박아 빨랫줄 걸쳐놓고
힘주어 세워주면 탄력으로 높아지던
아슬한 꼭대기에는 잠자리가 늘 쉬다 갔지

약에 쓸 힘도 없다시던 저물녘 엄마처럼
사는 일 힘에 겨워 진 빠지고 늘어질 때
무거운 헌 몸 받쳐줄 바지랑대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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