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종일 꽃비가
내렸어요
분홍, 참으로 멜랑꼴리
해서
보기만 해도 자꾸 허기가
돋는 말
바람결에 흐르는 분홍의
무덤가
물결마다 스미고 번지다
철드는 꽃말이 되었지요
가끔은 닿을 수 없는
분홍에게
가만가만 귀 기울이면
그리움이라 말하는
배알 없는 눈물을
만나기도 하지만
열손가락도 모자란 약속이
마디마디 꽃숨으로
잦아들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은
농익은 봄날에 숨어들고
분홍을 맹세했던 지문은
기억 속 당신을 맴돌다
맴돌다
기어이
분홍을 지우고 마는
눈이 시린 그 여자
시평(詩評)
이정순의 시는 그야말로 분홍빛이다. 그녀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농익은 봄날에 한숨 쉬듯 아련한 그리움이 열 손가락 약속에 마디마디 꽃숨을 잦아들다니. 언젠가 우리들도 분홍을 그리워하며 눈을 시려하기도 하고 배알없는 눈물에 몸도 달 것 같음을 이 시에선 아주 말랑말랑하게 다가와 안긴다. 언젠가 만난 듯 배시시 웃고 있는 이정순 시인의 내면이 너무나 순결하다 못해 고결해서 시인은 아마도 그런 모습이어야 하나 생각하게 된다. 봄은 언제나 이정순 시인의 마음 속에서 분홍빛이고, 그 분홍을 받아 드려 자꾸만 허기지게 하는 것은 이정순 시인의 청순함에서 오는 시어의 폭발일 것이다. 산과 들에 피어난 꽃들과 자연이 주는 향미로운 숨결을 느끼며 오늘은 이정순 시인의 시 한편 낭송해 보면 어떠랴. 출렁이는 봄의 품에 안겨서 시와 함께 봄노래를 부르면 어떠하랴.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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