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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교수의 산림경제] 지방자치제도의 혁신을 수원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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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교수의 산림경제] 지방자치제도의 혁신을 수원에서부터
  •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3.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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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

18세기 후반 수원은 조선 개혁을 위한 혁신 도시로 성장하였다. 개혁군주 정조가 수원신도시를 만든 근본적인 이유가 조선의 개혁을 위한 혁신적 실험때문이었다. 그래서 수원을 혁신도시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독점권을 갖고 있는 시전상인들이 일반 백성들이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권리를 갖고 있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조선의 백성들은 아무리 남는 물건이나 곡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다 팔 수 없었다. 독점권을 갖고 있는 상인들의 권리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정조가 왕이 되었을 때까지 이어졌으니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민생이 나아질 수 없었다.

그래서 정조는 이를 개혁하기 위해 수원신도시 조성 이후 수원사는 모든 이들에게 누군든지 장사를 할 수 있게 허용했다. 심지어 왕실재산의 중 일부인 6만냥을 수원으로 하사하여 상인이 되고자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대여해주게 하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성공이었다. 물류가 돌아가고 백성들의 이익이 커져 빠른 속도로 수원의 백성들이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수원에서의 상업개혁 성공은 곧 조선 전체로 확대되어 마침내 1791년(정조 15)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정조는 조선의 농업생삱량을 늘리기 위한 저수 농법을 크게 기획하였다. 대형 저수지를 인공적으로 조성해서 백성들이 가뭄에도 안정되게 물공급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어했다. 이러한 정조의 뜻은 역시 수원에서 먼저 실천되었다. 수원 북쪽에 만석거라는 저수지를 만들고 남쪽에 만년제, 서쪽에 축만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저수지 옆으로 토지없는 백성들이 농사지어 생업을 유지할 수 있게 국영농장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농업기반 조성 덕택으로 가뭄에도 대풍을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수원은 개혁을 위한 실험을 했던 혁신도시였다.

정조는 수원을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혁신도시만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었다. 행정제도 개혁을 위한 도시로서도 기획하였다.

조선시대 최고 병폐는 지방 고을에서 행정의 실무적 일을 담당하는 아전들에 대한 급여가 일체 없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이방이나 호방, 형방 등 6방 아전과 그 안에 소속된 수십명 아니 큰 고을은 수백명에 이르는 서리들의 급여가 일체 주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이아기다. 국가가 일을 시키고 어떠한 경제적 보상도 하지 않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나라의 정책이 이렇게 비극적이었으니 각 고을의 아전들은 백성들을 착취하여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해간 것이다. 처음에는 유지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자신들이 갖고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것이다. 오죽하면 백성들 사이에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고을 아전들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비합리적인 상황을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 생각한 정조는 수원에서 혁신적으로 지방행정 제도의 대대적 개혁을 추진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수원유수부 아전들에게 급여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전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조의 일기인 일성록 23년의 기록에 아전들이 얼마나 감격하고, 이를 통해 수원지역 아전들의 부정이 현격히 감소되고 백성들을 위한 행정이 나아졌음이 있다. 400여년에 이르렀던 구태가 사라져가는 것이다. 정조는 수원에서의 지방행정 혁신을 기반으로 조선 전체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물론 처음하는 일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급여의 수준이 아전 가족들이 충족하게 생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조와 조정 대신들이 이런한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결국 정조의 지방행정 제도 개혁은 일차적으로 성공하고 조선 전체로 보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조의 죽음으로 아쉽게도 더이상 활성화있게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나 수원에서의 지방행정 제도 개혁은 우리나라 행정사에 있어 빛나는 역사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방행정과 중앙행정의 양 날개로 날아간다. 어느 한쪽의 날개가 꺽어지거나 힘이없으면 온전히 날아가 수 없다. 그래서 지방행정제도 더 나아가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상당수 이전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지역이 발전해야 국가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진짜 국가균형발전이다.

정조시대 수원 지방행정의 제도 개혁의 정신을 이어받고 그 개혁 추진 내용을 상세히 이해하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큰 개혁을 수원에서 제시하는 개혁안으로부터 추진하기를 바란다. 가장 오래된 개혁도시의 위상과 역사성으로 큰 기획을 이미 마련하였으니 수원의 기획과 정책, 제도를 적극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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