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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칼럼] 정조대왕의 수원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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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칼럼] 정조대왕의 수원사랑
  • 정승렬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 승인 2021.03.01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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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렬(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정승렬(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고 있는 듯 도시는 폐쇄되어 있고 공포와 불신이 난무하고 있다. 계속되는 코로나19와의 싸움으로 국민들은 도탄지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희망의 빛은 보이질 않고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백약이 무효라고 했던가, 점차 꺾여야할 역병은 오히려 인간들을 비웃듯이 고개를 쳐들며 극성을 부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느님이 오만한 인간에게 벌을 내린 대재앙”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모두가 돌아 앉아 있으며 상황이 바뀔 때마다 변이적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수원시내 매탄동 정류장을 지나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아” 하는 탄성과 함께 웃음이 빵 터졌다. 최근 들어 웃을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분위기 반전이다. 어느 시민의 발상인지 아니면 어느 공무원의 아이디어인지 착상이 기막히다. 마스크를 쓴 정조대왕의 어진 속에서 “역병으로 시민의 걱정이 많으니 마스크 착용을 명하노라”라고 쓴 한글 고문자 형식의 간결한 문장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사상유례 없는 역병 코로나19는 결국 조선국 제22대 임금이신 정조대왕을 모델로 소환하여  시민들이 모이는 버스정류장을 지키게 했으며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어명을 내리신 것이다. 이는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마스크 미착용시 10만원의 과태료 부과’라는 경직되고 강압적인 계도 문구보다는 위트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사라지게 했다.

수원시는 정조대왕이 건설한 신도시로써 그의 수원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도 귀하다.
1789년에는 사도세자로 알려진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능을 양주 배봉산에서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지금의 화성시 소재인 화산(花山)으로 이장하고, 영산 광교산 줄기인 팔달산으로 수원의 읍치를 이전했다. 1793년 수원을 개성부·강화부·광주부와 같은 지위인 유수부로 승격시켰으며 1794년부터 수원성 축성을 시작하여 1796년에 완공하게 함으로써 수원은 새로운 형태인 행궁 성곽도시로 탄생했다.

이렇게 수원과 인연을 맺은 정조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특히, 정조대왕은 할아버지 영조의 뜻을 이어 받아 나라의 관료와 백성들의 화합을 위한 탕평책을 계승했으며 아버지 장헌세자를 뒤주 안에서 굶어 죽이게 하고 자신을 왕으로서의 즉위를 끈질기게 방해했던 정파들에게도 보복정치는 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남인에 뿌리를 둔 실학파와 노론에 기반을 둔 북학파 등 여러 학파의 장점을 수용하고 그 학풍을 특색 있게 장려해 문운을 진작했으며, 서얼을 등용하고 중인과 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을 적극 지원하는 등 서민 정치를 행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조대왕을 그야말로 성인과 같은 군주로 추앙하는 것은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소통의 폭을 넓혔다는 점이다. 한 예로 팔달문 전통시장 입구에 ‘불취무귀(不醉無歸) 조각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불취무귀란 “취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화성 축성 담당자들을 격려하는 연회자리에서 정조대왕이 부른 건배사이다. 모든 백성들이 술을 마음껏 마시고 풍족한 삶과 흥이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격의 없는 소통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범하고 개혁적인 군주로서의 큰 덕을 읽을 수 있으며 노동자 계급의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는 정치행보는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정조대왕은 조선의 근대화를 자주적으로 이루기 위해 과감한 변혁을 단행한 것은 물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다. 아울러 격동기였던 18세기 말 열린 생각을 갖고 끊임없는 당파 싸움 속에서도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를 포용했던 현군(賢君)이기도 했다.

이렇게 2백여 년간 잠들어 있던 성군 정조대왕을 부활시켜 코로나19의 예방을 위한 계몽군주의 역할을 일임한 수원시의 수준 높은 행정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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