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수필 /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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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 나쁜 사람
  • 이경선 수필가
  • 승인 2020.10.2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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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선 수필가.
이경선 수필가.

 

한 여자 운동선수가 하늘의 별을 자처했다. 일찍이 고등학생 시절 태극마크를 획득한 화려한 이력인데도 그녀의 현실은 지옥이었다. 요즘 시대에 있을 법한 일일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인 공포의 촌각을 견뎠을 상황을 떠올리니 가슴 언저리가 먹먹하다. 일종의 시기 질투에 따른 상습구타와 낭설에 이은 따돌림이 원인이다. 그녀의 가족은 이 억울한 상황을 겪고 앞으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실상에 살이 떨려오고 가해자들이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에 더욱 분개하며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있다.

좋다, 나쁘다는 포괄적으로 구분 지어 말할 때 쓰이고 있다. 초등학생 언어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보편적인 평가로 구분 지을 때 사용한다. 인간은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주변인을 지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에게 잘하면 조금 실수를 해도 좋은 사람이 되고 반대 상황이면 면면이 본받을 부분이 있어도 나쁜 사람으로 낙인 되는 현실이다.

한두 사람이 아닌 공통의 의견이 모아졌을 때 그 장본인의 인품이 지칭되어야 하거늘 선입견으로 평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기와 질투가 주된 원인이고 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만연된 오만이 문제다. 또한, 팔랑 귀처럼 남의 이야기만 듣고 잣대를 정하는 우매한 영혼의 방관자들이 끊이지 않기에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순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악을 도덕적 수양을 통한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성악설의 논리를 펴냈다. 청소년기에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학설을 부정적으로 보고 성선설을 추종했지만,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근자에 와선 순자의 주장도 결코 근거 없는 학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이론도 일종의 성악설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땐 식욕 등 본능적인 욕심만 존재하고 자아가 눈을 뜨는 시기에서야 판단력이 생기고 서서히 교화되어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도덕성이 생긴다는 논리에 마음이 기운다.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은 선해지고 악해지는 영향을 받기에 상호관계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상대적이다.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미워하게 되진 않는다. 좋은 사람이란 선입견으로 응대하게 된다. 반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상황에 제삼자의 말만 듣고 덩달아 폄하하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현명치 못한 자아형성과 목적을 주도했던 이의 좀비 근성이 안타깝다.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상대방을 질투하며 부화뇌동하는 이들의 뽀얗기만 한 뇌 검사를 의뢰하고 싶다.

마음의 근력이 약하고 소극적인 성격에 비해 주변에 올바른 성품의 지인이 많은 편이다. 속내를 보일 수 있는 벗이 여럿 되어 나이 들수록 소중한 자산처럼 여기고 있다. 내 주변이 평온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 속에 어울리기 위해 특별한 일이 아닌 한 나를 돌출하지 않으려 애쓰며 지냈다. 어려서부터 받은 인성교육이라곤 착해야 하며 다투지 말고 순종하라는 조선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선한 사람의 표본을 요구했고 우리 세대는 대부분 그러했다. 강산이 여러 번 지난 요즘은 남을 배려하는 부분보다 존재감과 특출해야 한다는 부분에 더 비중을 두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연유로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김지연 / Zinna kim /한국미술협회회원
김지연 / Zinna kim /한국미술협회회원

뒤바뀐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나쁜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다. 사사건건 지적하고 불만을 제기하면 우선은 귀찮아서라도 신경 쓰며 다독이려 한다. 유한 성품에 참고 인내하는 사람에겐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이해할 거라며 안이하게 대처하고 우는 아이 젖 물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올바른 대처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립다.

다분히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잣대에도 문제가 있고 원했던 것만 바라던 본성을 탓하진 않고 주변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사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반사회적 인물이다. 난 지금껏 누구에게도 목적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다.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최소한 해를 끼치지 않으려 배려한다는 것이 지나쳐 타박을 받기도 하지만 고쳐지질 않는다.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흔히 쓴다. 서로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려는 정신적 공간을 지녔다면 아무와도 부딪힐 일은 없다. 어떤 무례한 이는 왜 상대방 마음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최악의 이기적인 경우도 보았다.

 
경쟁사회에 살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양심과 기본 예의는 품고 살아야겠다. 음해하고 편을 가르고 이용하여 얻는 것은 물거품이란 인식을 자명하게 받아야 한다. 모나지 않은 돌에게 정을 던지는 성격장애자들은 영원히 거리두기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푸르디푸른 청춘의 부음 소식에 허무하고 가여워 긴 한숨이 내 쉬어진다.
 
세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려 그녀는 결국 세상 밖을 택했고 예상한 대로 가해자들은 미리 짜 놓은 대본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억누르고 비방하여 정상 호흡을 막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버틸 재간이 누가 있겠는가.
 
채플린의 명언처럼 화려한 국가대표 선수로 멀리에서 보면 희극 같지만 현실은 비극이었을 그녀가 미련 없이 내 던져버린 삶을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찬사로 덮지 말자.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뒤돌아 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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