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을 흠모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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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을 흠모하는 사람들
  • <정명희의 문학광장>
  • 승인 2020.10.0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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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수원문인협회 회장

 

늦은 밤 창문을 따라 비치는 달빛이 영롱하다. 사위는 적막하고 바람소리조차 잦아든다, 아예 작정이라도 해서 제대로 된 간절한 소원을 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 주위마저 조용하다. 그렇게 달이 뜨고 있다. 분주하고 정신없던 날들을 뒤로하고 모처럼의 휴식 속에서 밤하늘을 채우는 둥근 달을 보니 뜬금없는 생각일까. 내 소원을 저 달에게 어떻게 말할까. 늘 달만 보면 생각하는 버릇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소원을 빌어 본 적도 없고 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크고 둥근 보름달을 벗 삼아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지니 생각지도 않았던 소원을 빌고 싶어진 것이다. 아직도 철이 덜 든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지하게 소원을 빌고 싶다. 아주 현실적이고 가장 절실한 소원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달은 점점 더 영롱하게 빛을 발한다. 어둠을 지울 작정이라도 한 양 바쁜 내색 하나 없이 시간과 동승하여 서서히 따라 온다. 정말 소원을 빌 생각이 있는지 탐문하려는 자세다. 이리재고 저리재는 모습을 보기 싫어 재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십 여 년 전 쯤 한 때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 되었다고 하여 사람들은 많이 설레고 흥분했다. 그러나 나에겐 처음으로 시련이 닥쳤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지인 부부들과 동반하여 한라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도중에 그만 실족하여 길가에 쌓여진 화산석에 부딪쳐 복숭아뼈와 정강이뼈가 동시에 바스러졌다.

창피하기도 하고 난감한 생각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지인들의 남편들은 저마다 핸드폰으로 119를 부르느라 야단법석이 났다.

어찌어찌해서 산악구조대가 올라와 들것에 타고 내려오는데 내 생애 처음으로 영롱한 별이 마치 살아있는 신비의 영물처럼 내 눈에 들어 왔다. 너무나 성스럽고 신비하여 가슴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 위로 지구만한 보름달이 금방이라도 내려 와 천상의 어디론가 데려갈 것처럼 눈부시게 비치고 있었다. 순간 부서진 다리의 통증은 아랑곳 않고 그 신비함에 빠져들어 차라리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 산길을 내려오는데 그 충격이라니 어찌 그 순간을 놓칠 수 있었으랴.

그 후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다쳤던 상처를 기억하는 일과 생전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던 달의 신비함에 가슴 설레던 순간을 어김없이 회상하곤 한다.

달의 매력이기도 한 투명하고 정갈한 청정무구의 모습이 진부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듯 믿게 되었으니 아픔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게 될 수 밖에.

어쩌다 달을 바라보면 그 때의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어디가면 그런 별과달을 볼 수 있을지 골몰하곤 하지만 아직까지 찾지는 못했다.

오늘의 보름달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 때처럼 신비로운 광채가 마치 다시 살아난 생명체인양 온 동네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묘한 달의 기운은 점점 더 온 몸에 스며드는 것도 같고 단 숨에 품어 안으려는 듯도 하다. 어쩌면 지그시 바라보며 무언가 하소연하는 듯도 하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주위를 따라 걸으며 마음속의 생각을 추슬어 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주변의 사물들에게 나직하게 말도 걸어본다.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달처럼 모든 것들에게 베풀고 싶은 순박한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내 생각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 가운데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 제일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저절로 겸허해지는 자연에 가까운 순수의 시점에서 자기가 원하는 최고의 소원을 비는 것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정신적 위안의 도구이리라.


우리가 사는 곳으로부터 달은 22,530km나 되는 먼 거리에 있지만 가끔은 아주 가까이 있는 듯한 친근한 모습으로 달은 다가온다. 한달에 한 바퀴 타원으로 지구를 보호하듯 공전을 한다하니 그 것도 인간과 달과의 관계 속에는 숙명적 인연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엣 어르신들은 달을 보고 생명의 집이라고 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를 받은 여인들의 몸에는 창조의 기운이 서려있어 잉태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아직 다 못 이룬 소원이 있는가. 평생을 소원하나 이루기 위해 빌어 본 적이 없지만 저렇게 둥근 보름달을 가슴에 안고 신비와 영험의 장엄한 능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불사를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올라온다.

달을 통해 바로 마음의 사악함을 없애고 불편함과 모자람을 없애기 위한 일이야말로 최상의 소원이 될 것이다.

달이여!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게 당신이 가지는 최고의 평안함과 행복의 기운을 가득하게 내려 주소서라고

비울 수 있을 때 제대로 비우는 마음, 좀 더 따스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아주 진솔하고 소박한 당부와 함께 내 안의 나를 송두리째 깨고, 순박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원을 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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