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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우산 - 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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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우산 - 임수진
  • 임수진 작가
  • 승인 2020.09.24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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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 임수진 작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손에 힘을 주어 버튼을 눌렀다. 뭔가 뻑뻑한 느낌. 좀 더 힘을 주었다. 텅, 소리와 함께 보라색 3단 우산이 펴졌다.

펴진 우산은 부드러운 둥근 원의 낙하선이 아닌 삐뚜름한 가오리 모양이다. 여덟 개의 살 중 세 개가 못쓰게 되었다. 하나는 천과 분리되었고 두 개는 살이 휘었다.

주변을 살피다 가까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편의점 건물 계단참에서 우산을 살폈다. 중봉을 기준으로 여덟 개의 살이 받침살의 보조를 받으며 펴졌다 접어졌다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구조가 사람 관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러진 우산살을 만져본다. 가느다란 우산살은 제법 단단하다. 우산을 관찰하긴 처음이다. 엄마 몸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우산이 접힌 채 녹슬고 있던 것처럼 엄마 몸이 고요히 삭아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한 곳 싱싱한 곳이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울었다. 그게 우스워 까르르 웃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너도 늙어보라고 했다. 나는 평생 안 늙을 것 같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곤 했다.

 

 

엄마도 새로 산 우산처럼 청초하니 예쁜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몸도 나이 들면 뼈에 바람이 들고 마디마디가 쑤시고 짐짝처럼 끌고 다녀야 한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막내야. 눈알이 둘러빠지는 것처럼 아프구나.”

그럴 때마다 눈알이 둘러빠지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엄마의 과장 섞인 투정에 진저리 쳤다. 안구건조증이 생기면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뻑뻑하다는걸 당시엔 몰랐다. 그 사이 엄마 몸은 바람 든 무가 되었다. 움직일 때마다 무릎이 뚝뚝 소리를 내는 게 흡사 비명소리 같다고 했다. 당신 몸이지만 홀로 감당하기 힘겨워 도움을 청한 건데, 공감해 주길 바란 건데 딸이란 것은 넋두리에 지쳤다는 듯 다정하게 굴지 않았다. 늙어보지 않았기에 늙은 몸이 내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내게 엄마는 딸년은 키워봤자 도둑년이라 했다가, 이걸 낳고 내가 미역국을 먹었느냐고도 했다. 그랬다가도 어느 날은 너만 보면 고생이 사르르 녹는다고 했고 널 낳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냐고 했다. 자식은 평생 받을 행복을 어릴 때 다 준다고, 그 힘으로 평생을 견디는 거라고 했다.

이젠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엄마. 하늘나라에서는 뼈마디가 쑤시는 일 더는 없을까. 여든아홉 해 동안 엄마를 걷고 서고 앉고 움직이게 했던 몸도 이젠 편안할까 시리다, 아프다 할 때마다 오래 쓰면 다 그런 거라고 쌀쌀맞게 말하거나 무심히 넘기지 말고 삭은 몸을 쓰다듬으며 고생했다 사랑한다 말할 걸 그랬다.

비 오는 날만 찾는 우산처럼 나는 언제나 필요할 때만 엄마를 생각했다. 참 나쁜 년이다. 무척 이기적인 년이다. 그래서 엄마는 때때로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딱 너 닮은 딸을 낳으라고 한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딸이 있다. 딱 나를 닮았다. 예쁠 때도 서운할 때도 있다.

이게 순환적 삶인가 싶어 허공에 웃음을 터뜨리는데 엄마가 보고 싶다. 우산은 새로 살 수 있는데 엄마는 살 수 없다. 그걸 이제 알았다고 말하는 건 위선임을 안다. 알면서도 살뜰히 챙기지 못했기에 자식은 ‘엄마’소리를 들으면 가슴부터 젖는다.






<약력>

2004년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현진건문학상신인상

경북일보문학상

저서 「나는 여전히 당신이 고프다」 「향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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