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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무채색 풍경에서도 생명은 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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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무채색 풍경에서도 생명은 부화한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3.07.24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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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뽀얀 달빛이 늦은 저녁을 훑고 어둠 속에서 서기를 발하며 매혹적 미소를 흘리고 있다. 사위는 고요하고 늘어선 가로등 불빛만이 안개 속에서 부서지며 마치 사열하듯 달려온다. 그런 밤길, 차 안에서 밖을 보는 풍경은 아늑하다. 어쩌면 푸근하기까지 하다. 늦은 밤인데 왠 청승이냐고 물으면 전혀 상반된 답을 내 줄 수밖에. 아찔하면서도 짜릿한 밤을 즐기는 것은 외도와도 같은 쾌감이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 목적지는 있지만 과정은 언제나 외로움의 극한, 그 시간을 뚫고 점점 더 가까이 귀소의 길에 선다.

언제부턴가 시야에 들어오는 물체들이 형상을 만들며 일어선다. 아니 살아나서 움직이는 것이다. 애써 눈길을 돌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만 번번이 실패다. 아주 잠시지만 주위의 사물들은 교감이라도 하듯 살아있는 형상으로 눈길에 잡힌다.

이젠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다. 섬찟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한 데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사람의 형상으로 보여지는 그 무채색의 풍경은 눈꼬리 가까이에 매달려 배슬거린다.

한두 번이면 족하다 생각하고 잃어버릴 양 치면 꼭 그때쯤 다시 부화한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생각지도 않은 발견의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에서 창밖으로 풍경들이 꿈틀거리며 일어선다. 어떤 때는 뼈 없는 동물처럼 허리를 휘어 땅으로 내리박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사연 있는 사람처럼 얼굴을 빼꼼히 내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두 가지의 마음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야릇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다. 마음이 뒤죽박죽 되는 것은 천생의 습성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한결같이 그들의 형체들은 무생물의 상태에서 내가 지나는 그 시간에 일어서는 것일까.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통 알아낼 수가 없지만 두 번째 그들의 움직임이 무생물 자체로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다.

움직이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답답하지도 않고 싫증도 나지 않을 것이며 새로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황은 언제쯤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아이들이 성장해서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쯤이었던 듯하다. 그 때부터 집에서도 컴퓨터 앞에서 쉬지 않고 글을 끄적이면서 까만 밤을 날리던 때가 있었다. 재밌었다. 주제와 제목 잡기가 끝나면 어떻게든 몇 줄의 글 초안이 탄생되고 그러면서 새벽이 될 때까지 희열이 온몸을 엄습했다. 몰입의 기쁨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룻밤에도 몇 편의 습작을 하는 습성이 굳어진 어느 날 창밖으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서 잠자고 있던 날들의 그림자가 일어서고 그 속에서 내 어린 날의 꿈들이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피노키오의 얼굴이 나타나 창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바람은 불었다. 불다가 그치고 또 불다가 그치면서 창밖에는 모든 사물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며시 고개를 들이밀기도 하고 수줍은 듯 벽에 붙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일 많이 내 안의 습작이 만들어진 날 저녁 내내 허기져 울컥거렸던 최고의 배고픔이 사라졌다.

부화하는 시간들의 파편이 속속 박히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느낌과 함께 수 없는 나비떼들이 무리 지어 하얀 구름을 일구며 날아가고 있었다.

무채색의 풍경 속에서 지그시 지켜보던 숱한 날들이 생명을 찾아서, 아니 다시 돌아가는 귀소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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