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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내 동생의 사추기(思秋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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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내 동생의 사추기(思秋期)
  • 이인숙 수필가
  • 승인 2023.06.23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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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사춘기'라는 말에 빗대어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과 성공의 기회가 가을날의 낙엽처럼 훌쩍 떠나 가버린 듯한 허무감을 안겨준다.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던 거목이 어쩌면 생기를 잃고 삶의 내리막길, 혹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마저 준다.

사추기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며칠 전, 남동생을 만나고 난 이후다. 동생이 늘 분주한 일상을 보내왔기에 명퇴나 퇴직은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날 만난 동생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너무 그런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제법 안정된 공기업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생의 삶을 크게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동생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영원불변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동생이 말했다. 나이 55세가 되면 현재의 근무처에서 전문위원이라는 명칭으로 월급의 10프로를 감액한 금액을 받고, 아무런 직책이 없이 생활해야 한다며, 그로 인해 겪어야 할 허탈감과 자존감 상실이 괴롭다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최고의 직책을 맡았었는데 기로에 놓인 현실이 못내 아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동생은 여러 개의 자격증을 보여줬다. 법무사, 공인중개사, 개인택시 자격증도 모자라 로스쿨을 다니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으론 멋진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고도 했다. 예쁜 에이프런을 두르고 손님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음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생의 아내인 올케가 반대하는 입장이라 구상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힘없이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문득 동생이 두세 살 때 일이 생각났다.

우리 시골집엔 아버지가 정성껏 기른 배나무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무에 달린 배가 신기하기도 하고, 먹고 싶기도 했지만 쉽게 따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배가 한 개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는 아버지께 그 이유를 여쭈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어허, 이놈의 까치가 또 배를 따갔구나.” 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하지만 없어진 배가 동생의 기관지 보호와 감기 예방을 위해, 씨를 발라내고 호박잎 같은 이파리에 쌓여 푹 고아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날 이후,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었다.

딸 넷을 낳고 얻은 큰아들이기에 다소 귀하게 여기셨던 것 같다. 엄마는 동생이 아프면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시고, 비싼 녹용을 수시로 동생에게 먹이곤 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성장한 남동생이 퇴직이라는 높은 담을 앞에 두고 힘없는 발길을 돌려 가는 뒷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몹시 아려왔다. 185센티미터나 되는 축 처진 동생의 키가 너무도 작게 보였다. 또한, 언제나 동생이라는 선입감으로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희끗해진 동생의 흰 머리카락에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런 현실을 극복해 나가려는 동생과 헤어져 돌아온 나는 동생의 아픈 마음을 좀더 다독여주지 못한 안타까움에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씩 하고 싶은 말들을 이어갔다. 핸드폰 번호가 016으로 시작된 엄마의 전화번호로 내 마음을 담아보았다.

“엄마, 엄마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요즘 퇴직을 앞두고 힘들어해요. 엄마가 아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퇴직하고도 사회에 큰 몫을 하는 일원으로 살게 도와줘요. 이런 아픔을 또 느끼지 않게 엄마가 꼭 도와줘야 해요. 그리고 엄마 며느리 동장 된 것 알고 있지요? 엄마가 사랑했던 우리 6남매, 정말 잘 살고 있어요. 우리 6남매가 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으니까 엄마, 하늘에선 기 펴고 살아요.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가난 속에서 기죽어 살던 엄마, 이제는 얼마든지 힘내고 웃으며 살아요. 엄마, 내가 어느 날은 하루에도 수십 번 엄마를 부르는 소리 듣고 계시지요? 내 마음속에 엄마가 있어서 나는 행복해. 엄마, 사랑해요.”

문자를 보내는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 몇 글자의 답이 왔다.

-입력하신 수신번호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씁쓸한 기분을 다독이며 동생이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고 현재의 삶에 새로운 삶을 더 보태어 힘찬 발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동생이 겪고 있는 그 사추기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기에 동생과 같은 다른 사람들도 잘 견뎌 나가기를 바램하며,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도 힘을 모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이인숙 수필가
이인숙 수필가

*약력
-경기도문학상 신인상
-한국작가 신인상
-경기도문학상 작품상
-한국작가 이사
-경기도문인협회 제도개선위원
 

 

 


노각나무/류중권
노각나무/류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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