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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세월의 소리가 유난히 큰 어떤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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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세월의 소리가 유난히 큰 어떤 날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2.02.04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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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시집간 그 애가 들리는 날엔 거실에 슬며시 들어 온 햇살이 유난히 반짝인다.

가끔 눈길을 주던 무덤덤했던 화초들이 생기를 띠고 초록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가슴엔 찌르르 감전된 사랑의 실뿌리가 수없이 벋어난다. 팍팍했던 머릿속의 기억들이 매무새를 고치고 그 애가 떠나던 날의 퍼즐을 슬그머니 맞추고 있다.

그래, 그 애가 오다니.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섯 살이나 된 사내아이를 데리고.

메말라 버린 가슴 속 심연에 마중물이 되어 떨어지는 낙숫물, 그리고 서서히 범람하는 그 애에 대한 갖가지 설레임의 파동은 영낙없이 환희의 아우성이다.

무거워졌던 심신이 깨어나기 시작하더니 연신 사위의 열고 닫는 소리가 지천이다.

너무 그리움이 크면 만나기도 전에 신열이 올라 아플지도 모른다. 아무리 암시를 해도 이미 공중에 뜬 벌룬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드디어 띵동 띵동, 나보다 먼저 그가 문을 연다.

식사를 하라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 해도 막무가내로 들은 척 하지 않던 그가 잽싸게 문을 여는 모습에서 반가움도 반죽이 되는 구나 생각을 한다. 그의 몸체가 그리움으로 반죽이 되어 말랑해진다 생각한다.

무엇을 그리 잔뜩 들고 오는지 딸아이는 손수레를 끌고 온다. 그 애의 손수레에선 걱정과 연민과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나봐, 거울을 힐끗 돌아본다.

턱선 위로 한줄의 금이 나 있는 모습, 초로의 여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낯설게 비쳐진다.

기세당당하던 옛날의 젊은 여인은 온데 간 데 없고 그야말로 무말랭이처럼 수분기 하나 없는 자세, 허름한 모습의 내가 엉거주춤 서 있다. 그런데 웃고 있다니, 딸아이의 방문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반전이 온다.

“엄마,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 애의 손에 들린 수제비 반죽이 아이의 놀잇감인양 말랑하게 잘 뭉쳐져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면서 웃는 것 같다.

딸아이는 그 날 하루 종일 싱크대에서 떠날 줄 모르고 수제비를 뜨다가 부침을 하다가 과일을 깎다가 부산하다.

무엇이 딸아이를 저렇게 변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얼마 전 쯤 딸아이에게 푸념아닌 푸념을 해 댔다.

“난 못살겠다. 네 아빠가 너무 딱딱하고 답답하고 재미없어서 나무토막 같은 느낌이 들어. 어쩌면 좋으니?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난 이미 나의 무기력함을 이겨낼 힘이 없어진 것 같아”

아마도 그 일이었을 게다. 얼마나 놀랐을까. 공연히 하소연 한다면서 딸아이를 놀라게 하다니. 후회가 막급하다. 그래. 딸아이에게 엄마의 푸념은 사치일지도 몰라. 그저 그 애에게 보여지는 것은 어떤 상태에서든지 행복하고 편안하며 딸아이의 추억을 산산조각이 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 애는 그걸 바라고 친정에 오는 거였는데...

어리석게도 어미인 내가 안 될 노출을 하고 말았던 거지. 그 애도 살면서 우렁우렁 흔들리고 아프면서 힘들게 살지도 모르는데. 참. 얼마 전인가 목에 혹이 나서 갈아 앉지 앉는다고 걱정을 하더니. 병원에 가 봤느냐고 물어보니 의사가 뭐 신경 쓴 거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했지. 맘 편하게 먹으면 가라앉는다고 하면서 약도 안 지어주었다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딸아이의 아이가 부른다. 엎드려서 발장구를 치고 발랑발랑 뒹굴고 까불까불 흔들면서 장난질을 친다. 할아비는 아이의 장단을 잘 맞춘다. 짓궂게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아이는 그를 좋아한다. 블록도 잘 맞추고 진가도 잘하고 동전놀이도 아주 편안하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보조를 잘 한다. 때문에 아이는 나보다는 그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그동안 편안하게 누워있으면 그 뿐이니까.

한참을 분주하게 돌아치던 딸아이가 작은 방에 눈이 꽂힌다. 이제부터는 집안 청소다. 들며 나며 온갖 것을 다 들어내 놓더니 손수레에 쓰레기 봉지를 한아름 들고 나간다.

집에 가서 버리겠다고. 심장에서 찌르르 안타까움과 아릿함이 파동을 친다.

딸아이에겐 친정은 추억의 보고며 꿈의 산실이다. 그 보고를 엄마가 다 망쳐 놓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윽고 미안해 할 틈도 없이 다시 딸아이는 쉬지 않고 들락날락 온갖 청소를 한다.

그 모습에 속상해 하는 엄마에게 영양제와 화장품 세트를 한아름 들려 주면서.

이제 딸과 에미는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멀리서 잃어버렸던 기차의 정적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온 바로 그날에. 그래서 우리의 삶은 윤회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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