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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범구 의정부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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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범구 의정부시의회 의장
  •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김현채 북부취재본부장/ 글=김동초 대기자
  • 승인 2020.12.14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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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의 목소리를 소중히…더가까이 다가갈것"
오범구 의정부시의회의장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장선희·강영수 기자]
오범구 의정부시의회의장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장선희·강영수 기자]

12월의 첫날, 오전 10시, 약간은 쌀쌀한 초겨울의 날씨 속에서 수원을 출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의정부시는 경기도 ‘북부청’이 위치한 경기도 제2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의정부시 의회건물에 들어서니 코로나19확산으로 발열체크가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3층에 위치한 의회 휴게실에서 현지 지역기자들을 만나 시정소식을 주제로 간단히 담소를 나누고 오후 2시 미팅이었던 오범구 의정부 시의회 의장과 자리를 마주했다.
 
중년의 중후한 분위기의 오범구 의정부시의회 의장은 기자를 편안하게 대했으며 얼굴의 카리스마있는 인상은 마치 미국의 전설적인 명 배우 ‘알파치노’와 판박이 같은 모습이었다.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에서 풍기는 강렬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 일까하는 느낌이 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범구 의정부시 의회 의장은 독특하게 무소속이며 그것도 초선으로 의장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처음부터 무소속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내막과 사연을 거쳐 무소속 초선으로 의장 자리에 오른 것은 의리와 소통의 달인이란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오범구 의장은 경력 또한 독특했다.
 

무소속 초선 의장, 소통의 달인
원칙주의에 근거한 의정활동
빈농 출신으로 입지전적 인물
30년 이상 노동운동 인권 중시

오 의장은 1952년 경북 문경 점촌에서 5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는 대부분의 집안이 농사를 지었고 오 의장 집안도 농사를 지면서 “부친은 근처에 있는 ‘제비표 시멘트’ 공장에서 근무를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6. 25전쟁 당시 백마 고지 전투에서 얻은 부상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늘 병상에 계시다 58세 되는 해에 명을 달리 하셨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모친의 지고지순하고 희생적인 돌봄의 덕으로 우리 식구는 가난했지만 편안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교육열이 높았던 오 의장의 부친은 오 의장의 명석하고 총명함을 알고 어린 나이의 오 의장을 홀로 서울 동대문에 있던 명문 ‘덕수상고’ 자매학교였던 ‘덕수 중학교’로 진학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바로는 당시 중학교도 시험을 봐서 진학을 했던 시기로, 덕수중학교는 명문 중의 명문 중학교였다. 이 사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오 의장 역시 상당히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73년 군 입대를 한 오 의장은 당시 회계의 필수자격인 주산과 부기가 뛰어났으며 또한 필체가 좋아 사단 전체 PX의 경리와 보고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다”고 했다.

“제대 후 공무원에 뜻이 있었지만 뜻을 접고 78년 경 ‘요쿠르트’ 사업 등 3번의 사업 실패로 큰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사업실패 이후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지인의 소개로 택시회사에 취직하여 택시 기사로 종사하던 중 당시 택시회사 간부들이 택시 노동자에 대한 인격 모독 등 사측의 횡포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동료들의 애로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노동자의 인권향상을 위한 노동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었다”고 한다.

83년도 사회 분위기는 대학생들이 학생운동과 사회·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시기였고 학생운동으로 당시 서울대 제적생인 ‘배ㅇㅇ’동지를 만나게 되어 노동문제를 공부하며 노동운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에 오 의장은 대형면허를 취득해 의정부에 있던 ‘명진여객’ 운수회사에 취업해 90년까지 5년 정도 미군의 수송을 맡는 셔틀버스를 운행했다고 한다. 당시 시내버스와 미 8군 수송 용역을 담당했던 명진여객은 사업영역이 제법 큰 회사였다.

그 당시 동료 노동자들의 요청에 의해 회사 대표에게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문서화시켜서 전달해야 할 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오 의장에게 문서작성을 부탁했고 그 연유로 본의 아니게 자신이 근로자를 선동하는 주동자로 인식이 되었다고 한다.

1990년 11월 자연스럽게 오 의장은 노조위원장직에 당선되었다. 회사는 오 의장이 강성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여 취임 전에 회사를 매각하는 등 상당한 고민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의 생각과는 달리 노조위원장에 취임하여 첫 일성이 “노조와 회사의 균형있는 동반 성장을 위한 ‘상생(相生)’의 시급성을 피력”했다고 한다. 사측은 오 의장의 상생에 대한 신념을 믿고 회사로부터 운전기사 채용에 대한 인사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이는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소통의 힘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기사’를 채용 할 때 대가를 챙기던 브로커들의 뒷거래가 자행되던 시기였지만 오 의장은 “이를 철저히 근절시킴으로써 취업하고자 하는 기사들에게 신뢰감을 주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는 점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오 범구 의장은 명진여객에서 2017년 말 까지 무려 27년 동안 9선 연임으로 노조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 기간 중 2010년경에는 경기북부협의회를 창설했고 한국노총 3년임기의 경기중북부의장을 5선에 당선되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오 의장의 노사간의 균형잡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소통과 화합,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 의장은 근로자를 대변하는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근로자 자녀들의 학업성취를 격려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노총 경기 북부 장학재단 이사장”,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리적 경영을 위한 “경기도 노사 민정 위원회” 등 이외에도 많은 특이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의정부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82년도에 아내가 의정부초등학교 교사 발령으로 의정부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2017년 노조 운동에서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살면서 노동계의 권익 신장을 위한 조그마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노조 위원장 시절 자주 교분을 나눴던 전 국회의장이었던 문희상 의원의 권유와 경기 북부 노동계 후배들이 노동자들을 대변해 줄 정치인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강력한 출마 권고로 2018년 지방선거 의정부 ‘가’ 지역에서 출마, 당선되어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은 “지인이었던 아내 친구 소개로 당시 교사였던 아내를 만나 77년에 연을 맺게 되었다”고 했다. “양평이 고향이었던 아내는 집안이 화목했고 장모님의 후덕한 인상과 인간미가 마음에 끌려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오 의장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아내가 지금도 심성이 곱고 정치인의 아내로써 내조를 잘해주는 것은 양평 세월리에 ‘심’씨 집성촌에 많은 일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공동체 의식과 가정교육으로 심리적 안정감과 온화한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고 에둘러 표현하였다.

현재 아내와의 사이에 1남(40세) 1녀(42세)를 두고 있으며 “아들은 병원에 근무하며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했다. “큰 딸은 카톨릭 대학에서 ‘이학’석사를 마치고 연구원으로 종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아이를 출산한 관계로 사직하여 육아 중에 있다”고 했다.

자신만의 좌우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30년 가까운 노조위원장직을 역임해서 인지 “낮은 곳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자”라고 했다.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있다”고 말함으로써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사무와 행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임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생각해 본 바가 없지만 어떤 직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의정부시가 살기 좋은 도시,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후반기 시 의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며 12분의 시 의원님들과 늘 소통하겠다”고 하면서 “시민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시민과 함께하는 의정활동을 펼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정치인의 아내는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바를 알고 있기에 아내분에게 지면을 통해 하실 말씀을 부탁드렸다. 이에 오 의장은 “결혼 후 여러 번의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책임을 맡아야 했고, 유행성 출혈열로 인해 여러 합병증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저에게 지극한 아내의 간호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39 여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치를 하는 저를 말없이 지켜주고 충고해주는 아내에게 지면을 통해서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오 의장에 대해 느낀 점은 정의와 신념, 그리고 굳은 의지로 굴곡진 삶을 극복해 온 것 같으며, 오 의장의 마지막 말을 되짚어 보면 이제까지의 오 의장의 인생의 길에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교훈이 오 의장의 아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초선의원으로서 제8대 의정부시의회 후반기 의장에 당선된 소감은?

먼저 초선의원으로 의정활동 경험이 부족한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동료의원님들과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전례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 의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임기동안 46만 의정부 시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후반기 의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근 정수장 및 경전철 차량기지를 방문하신 목적은?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 일환으로 의정부 시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시설인 가능정수장, 의정부 경전철 차량기지를 방문 하였습니다.
정수장에서는 수돗물 유충발생에 대한 민원 처리 사항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시민들이 안전하게 수돗물을 음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경전철 차량기지를 찾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열차 내 방역 강화, 시설물 안전 관리에 힘써 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의정부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현장 속에 답을 찾는 의정활동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의정부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존경하는 46만 의정부 시민 여러분! 예기치 못한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맡은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주시는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8대 후반기 의정부시의회는 전반기에 쌓아온 의정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의회, 연구하는 의회, 현장중심의 움직이는 의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시민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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