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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회상(回想)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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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회상(回想)의 언덕
  •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 승인 2023.05.02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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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몇 번의 봄비가 내리더니 마냥 좋아하던 벚꽃잎도 스르르 녹아서 언제 그렇게 화려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라져 버렸다.

여기저기 뾰족뾰족 고개를 내민 새싹들은 앙징스런 모습에서 연둣빛 볼웃음을 띠고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이 산 저 산 철쭉과 진달래는 고운 단장을 하고 연지곤지 찍듯 산과 들을 새악시 볼처럼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그 사이 햇두릅, 방풍나물, 달래, 냉이 씀바귀들이 쑥쑥 자라 입맛을 돋우고 있다.

밥상 위에 올려진 햇나물들이 조물조물 무쳐져 식탁 위에 함초롬히 놓여 있으면 저절로 힘이 나고 밥맛이 살아난다. 환희의 봄이다.

일요일 아지랑이 가득한 들판과 소물소물 속삭이듯 들려 오는 듯한 봄 풍경이 눈에 어려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주변 청소를 해 놓고 도저히 집안에만 있기엔 몸이 근질거려 주섬주섬 봄옷을 차려 입었다.

불현듯 오랜 친구였던 ‘재’를 만나러 간다. 봄빛보다 더 포근한 친구다. 아무 때나 불쑥 그녀를 만나러 가면 그녀는 언제나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 준다. 내 곁에 수십 년을 아무런 굴곡없이 붙어있는 유일한 친구다. 그녀의 특징은 투박한 질그릇처럼 충청도 사투리를 그럴싸하게 구사하며 주위의 소재를 끌어다 슬그머니 웃기는 재주가 있다.

소박하고 구수한 정서를 갖고 있으며 매사에 성실하다. 주위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어느 때나 지극 정성으로 대한다.

모임을 할 때도 언제나 주위의 관심을 끌어내는 그녀는 오래 묵은 우거지 같은 묘한 친근감을 준다. 그러나 한 번도 나는 그녀를 “네가 좋아” 또는 “어찌어찌해서 너는 내 친구야”라고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무심하게 가까운 친구가 ‘나에게 있다’라는 정도로 여겼다. 대학도 같은 대학을 나오고 직장도 같았지만 사는 지역이 달라 어느 날부터 소식이 뜸해졌는데, 십여 년 후 우연히 같은 도시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옛날 일을 상기시키며 사춘기 무렵 목욕탕을 같이 갔던 기억을 들추어 냈다. 목욕탕에 같이 갔을 때 두 살이나 어린 내가 봉긋하게 가슴이 나온 것을 보고 ‘너 벌써 가슴이 나왔네.’ 했더니 화를 벌컥 내더라는 이야기. 또는 너희 집에 갔더니 엄마가 뜨개질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는 이야기, 커다란 사랑방에 수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는 이야기, 하물며 너희 집에는 꽃이 많이 있어서 보기 좋았다는 등 세심하게 우리 집 풍경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참 이상하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어쩌면 그렇게 소상하게 잘 알고 있는거야.” 놀란 내가 말하면 “이상하게 나는 너희 집이 부러웠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데 친구는 직장보고서를 봐 달라고 하며 서류를 가지고 왔다. 보고서는 승진과 관련이 있는 아주 중요한 의미의 서류였다. 책임감이 있어서 더 열심히 친구의 보고서에 대해 수정할 부분을 고쳐 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잘 썼는데도 등위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면 괜히 친구가 안타깝기 그지없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더 나이가 들어 이제는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데 그녀가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아주 성실하게 아주 정성을 다해 종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또 나에게로 왔다. 이제는 함께 취미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의 봄은 친구 덕분에 더 힘이 난다. 그녀가 원하는 일을 해 줄 수가 있어서. 아니 함께 할 수가 있어서. 어제는 색깔이 선명한 초록색 옷을 입고 오더니 오늘은 아주 고운 분홍색의 자켓을 걸치고 사무실에 방문했다. 무엇이나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언제부턴지 그녀보다 내가 더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다. 봄날같이 따스한 친구. 무덤덤한 나를 언제나 지켜주고 아껴주는 그녀는 내 인생의 유일한 동반자이며 친구가 확실하게 되어 버렸다. 그녀를 보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친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그리워진다. 수십 년을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이 기쁨을 무엇에다 비길 수 있으랴. 앞으로는 내가 더 많이 친구를 찾고 인생을 이야기하리라 마음속 깊숙이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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