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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책상 위 친구가 되는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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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책상 위 친구가 되는 생명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2.09.2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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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가을이 부쩍 다가와 어깨를 어루만지는 느낌은 끈끈하고 질척했던 여름의 열기가 꼬리를 감추고 어느새 시원한 바람을 살갗에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다.

바쁜 일상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피장파장인 일일 텐데 가끔은 혼자만이 그런 상황을 혼자만 겪는 양 축 처질 때가 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몰아친 일들이 서서히 마무리 될 무렵은 저녁이 어둑어둑해질때였다. 다른 날에 비해 너무 일찍 정리 되는 것 같아 안도의 마음을 내리 쉬면서도 무언가 숨찰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다행인 것은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는 B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사랑스런 그녀는 언제나 내 곁에서 의연하다. 아마도 그녀의 생활이 어릴 적부터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인내한 덕분이리라. 그녀가 있을 때는 아무리 바빠도 힘이 나고 기분이 좋다. 그녀만의 노하우가 전수되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기 삶에서 최우선을 여백에 둔다. 그녀는 그렇게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분주하게 살거나 힘들게 살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그녀의 말이 딱 맞는 말인데도 여유를 즐기는 일은 언제부턴가 내 사전에는 없다. 일중독은 분명한데 지금의 입장에서는 체력도 딸리고 여유마저 없어서 더욱 마음자체가 무겁기까지 하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먼 곳에 시선을 빼앗기는 습성은 일종의 도피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여러 가지 일들이 산재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싸다는 한식집을 찾아 백반을 먹고 간단한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둘레길을 걸으며 자연을 만끽한다면 그 얼마나 소소한 행복일까. 그러나 오늘 당장도 마음의 눈길은 그로부터 멀어진다.

이리 뒤적 저리 뒤적 다 못한 프로그램과 리플렛을 정리하며 헤메고 있는데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j선생이 커다란 튀밥 한 자루를 들고 들어온다. 얼마 전 아픈 이별을 겪은 그여서 마음이 안쓰러운데 그래도 잘 견디는 듯한 표정과 눈빛이 안도감을 준다. 뭐니 뭐니 해도 운동이 최고라고 말하는 그는 약간 수척해 보이는 모습으로 「바쁘게 살았더니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 생겼다」고 말한다. 떨리는 듯한 그의 말 속에는 아픈 충격이 도사리고 있다.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뇌암으로 죽어갈 때 그는 최선을 다 해 보살폈다. 혹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상황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하나 잡아 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한사람만 찾아 부르고 또 부른다면 어찌 견딜 수 있을까. j선생은 그 역할을 너무나도 충실히 감당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이 힘들 때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하며 인근의 협회 사무실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녀의 건강은 악화되고 j선생도 함께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그건 어쩌면 불교로 말하면 지극한 고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얼굴이 검게 변해가고 육신은 지쳐서 환자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마치 실바람에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모습으로 육신 안의 모든 것은 가벼워 둥둥 뜨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속으로 저렇게 살다가 아픈 환자보다 먼저 돌아갈 수도 있겠다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런 시간이 연속되어진 어느 날 마침내 부고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는 살겠구나 싶어 안도감이 살짝 들어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B나 j 선생을 보면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진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체력은 딸리고 잠은 자야하고, 집안일은 산더미인데. 요양보호사도 오기 싫어하는 환경에서 남편을 잃은 B나 아내를 잃은 j는 어떻게 그 시간을 극복했을까. 그들이 가끔 찾아 올 때면 생각한다. 바로 이 분들이 천사일거라고. 아마도 사람천사는 하늘의 천사보다 더 훌륭한지도 모른다. 오늘도 함께하는 그들이 있기에 보잘 것 없는 나의 생활도 윤기가 나는 것 같다.

문득 어질러진 책상 위를 보며 늦은 밤 11시가 넘어 가는 데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글을 쓰고 사무 일을 보는 힘을 준 것은 B나 j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일에 찌들어 책상위의 서류들을 챙길 수가 없다. 물건 하나하나가 반듯하게 놓여진 것이 없는데 갑자기 그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우리들도 생명입니다.”

“당신이 뭐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제 할 일을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아주 소중한 일 친구니까요. 이제 그만 내일 하시죠.”

말이다. 오늘 나는 점심시간에 잠깐 휴식같은 식사를 하고 그 뒤론 곧바로 정신없이 무언가를 해 냈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환담도 하고 책상정리도 하고 좌석 배치도 하면서 배너는 반듯한지, 등록부는 잘 챙겼는지, 프로그램에 활자는 틀리지 않았는지 살피고 또 살핀 일의 연속이었다. ‘맞아, 이제는 집으로...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책사에 널브러진 친구이자 나의 생명체들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컴퓨터를 끈다. 그들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편안히 휴식을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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