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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가는잎그늘사초를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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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가는잎그늘사초를 따라가다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 승인 2022.09.08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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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산길을 걷다보면 눈에 잘 띄는 풀이 있다. 바람이 조용하고 햇볕이 따사로운 날에는 가지런하게 빗으로 내려 빗은 듯한 푸르고 긴 머리칼 같은 풀이 나무그늘 밑에 보인다. 함초롬하면서도 단아하고 새촘해 보이기까지 한 이 풀은 첫봄이 올 때는 색깔 때문인지 그저 자체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예쁜 들꽃에 가려 내 눈 속에는 들어오지 않던 풀이기도 한데 갑자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는잎그늘사초」를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들꽃에 관심이 많은 y선생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보도 블럭에 낀 작은 풀꽃까지 이름 하나하나를 알고 있는 y선생은 자칭 타칭 자연인이라고 부르기에 안성맞춤이다. 어찌 보면 경이롭고 대단한 사람이다.

그 선생을 만날 때 쯤 무언가를 외우고 기억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나는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다. 그저 머리가 무겁고 빡빡해진 느낌이 자주 들어 혼자 있을 때는 눈을 감고 얼마간을 쉬어야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의식에 무게가 더 해진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반면 머릿속이 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는 두렵기도 하고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 관심을 갖고 무슨 이야기든 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y선생의 들꽃이야기를 들으면 동화나라에 들어 온 느낌이 난다. 그래서 컴퓨터에 선생의 들꽃을 저장해 달라고 했다. 선생의 들꽃 방은 풍성하고 볼 것이 많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그는 들꽃 하나하나마다 다양한 방면으로 여러 가지 각도에서 수십 장면을 연출해 내어 앵글에 담았다. 작은 것도 기억하기 싫어하는 나와는 정 반대 성향이며 섬세하고 자상한 면이 좋아서 어쩌면 들꽃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이름 외우기는 빼고 그저 예쁜 꽃을 비교하고 살펴보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만 가늘고 긴 머리칼 같은 초록색의 「가는잎그늘사초」를 화면에 띄우고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이 것을 어디에서 봤을까?’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한 계절이 지나고 두 번째 계절이 다 지나갈 무렵 혼자서 무릎을 치게 되었다. 바로 그 풀,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그 풀은 여기저기 밭둑이나 논둑, 그리고 산자락이나 언덕이나 자기가 자라고 싶은 곳은 어느 곳이든 자라나는 막풀 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봄에만 예쁜 풀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이들이 각시풀이라고 하며 머리를 땋아 놀기도 한 것이 그 풀이라니. 어리석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기까지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된 후 담소를 하다보면 고향이야기가 나오는데, 덧붙여서 어릴 적 소꿉놀이며 장난놀이 하던 이야기 중에 드문드문 나온 이야기가 각시풀이라는 것이다. 어느 동화작가는 각시풀 이야기를 동화로 쓰기도 했는데 나는 전혀 연결을 지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찾아보기는커녕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것이다. 가을이 되면 다른 풀처럼 누렇게 망가져서 누구보다 보기 싫은 모양으로 여기저기 들판이나 언덕에 모습을 들어내는 데 그 때는 더욱 외면까지 할 정도였으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 각시풀을 다른 말로는 산거울이라고도 한다. 산거울(산거웃)은 겨울에도 여름에도 연중 건조한 곳에서만 자란다고 하는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려는 힘이 강하고 과밀하게 번식하여 주변 생태계를 파괴하는 힘도 있다고 한다. 자생하기 위하여 주변을 못 살게 하는 강력한 자생력의 대표적 풀이다. 또 다른 말로는 산 거웃이라고 하여 사람 몸에 덧붙여 나는 털이라고 하여 거웃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 뜻이야 어쨌든 「가는잎그늘사초」란 말이 나는 좋다. 이른 봄에 한 쪽을 곱게 늘어뜨린 연두빛의 머리칼을 가진 풀, 누군가 헝클고 싶은 욕구를 갖게 하는 가지런함의 표상으로 길고 긴 머리칼을 날리며 바람을 유혹하는 것이 매력이 있다. 한 계절을 그리 지나고 남들이 다 무르익는 가을에는 온 힘을 다 한 후의 허탈감으로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모습으로 세상을 비관하는 듯한 모습을 아무런 방비없이 그대로 보여 주는 자신감은 또 무엇일까. 자연에서도 우리 인간처럼 무기력함과 자괴감을 그대로 드러내기 쉽지 않을 텐데 다시 보게 되는 「가는잎그늘사초」에서 인생에 대한 또 하나의 경지를 들여다보는 나를 본다. 문득 가을에서 봄으로 가는 역행의 길은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 허공위에 물음표를 그려 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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