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 서울
    H
    10℃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H
    10℃
    미세먼지
  • 광주
    B
    8℃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12℃
    미세먼지
  • 울산
    B
    10℃
    미세먼지
  • 부산
    B
    미세먼지
  • 강원
    H
    12℃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B
    10℃
    미세먼지
  • 경북
    B
    10℃
    미세먼지
  • 경남
    B
    11℃
    미세먼지
  • 제주
    Y
    10℃
    미세먼지
  • 세종
    B
    8℃
    미세먼지
[아침에 읽는 수필]시모님의 추도식
상태바
[아침에 읽는 수필]시모님의 추도식
  • 김옥순 수필가
  • 승인 2022.08.26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빗줄기가 한낮이 지나도록 그칠 기세가 아니다. 점점 창밖으로 빗소리가 거세진다. 칠월이 되면서 늦장마가 어느 해보다 더 잦다. 비를 맞으며, 몇 가지 반찬거리를 샀다. 그리고 꽃핀 화분 한 개를 사려고 동네 시장 골목까지 돌았으나 오랫동안 거래하던 꽃집이 주변 공사로 없어졌다.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3주기가 되는 날이어서 어느 때 같으면 벌써 시골 시댁에 가 있을 시간이지만 코로나19 때문에 3년째 그냥 각자의 집에서 고인을 생각하며 가족끼리 모여 예배를 드린다. 얼마 전부터 코로나19가 많이 진정되어 남편과 같이 지금은 환갑나이가 된 큰조카 부부가 사는 시댁에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시댁에 사정이 생겨 올해도 집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농사일이 다른 집보다 유별나게 많은 데다가 남편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 젖소를 여러 마리 키우는 목장을 하게 되어 결혼 후에 바로 시댁에서 살게 되었다. 매일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바쁜 중에도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께서 어린 두 아들을 키워주시어 종갓집 며느리 노릇과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수원으로 분가한 뒤에도 남편은 시골집에서 시어른들과 살았다.

주말이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달려가 부엌일을 하며 시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와의 추억이 유별나게 많다.

70호가 넘는 시댁 마을은 같은 성씨를 가진 집안 친척들이 모여 살았는데 종갓집 막내며느리가 된 나는 남편의 뜻에 따라 시댁에서 살면서 주말이면 더 분주하였다. 초지 때문에 시댁의 넓은 땅이 필요했던 남편은 시어른들의 뜻에 따라 농사일까지 하게 되자 남편은 내가 부엌일을 맡아서 할 수 있는 주말에 여러 명의 일꾼을 사서 일하였다. 당연하게 할 일이라 생각하고 집안일을 해나가며 학교 근무를 한 것 같다.

두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시어머니는 바깥일과 육아까지 맡아주셨으니 얼마나 힘겨우셨을까?

수원으로 분가 후에도 주말이면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달려와 뒷바라지를 한 나도 아주 많이 힘들었지만,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97세에 하늘나라로 가시기까지 65년 동안 시할머니를 모셔 효부상까지 받으신 시어머니를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떨궈진다.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장조림과 고깃국을 끓이고, 나물 몇 가지를 마련한 뒤에 베란다에 놓인 3층 화분 받침대를 살핀다. 15년 이상 정성껏 키워온 30여 개의 화분 중에서 올해 처음으로 꽃이 핀 동양란 화분을 골라 받침대까지 정갈하게 씻어 거실 큰 탁자에 놓았다.

살아계실 때 정겹게 보살펴주신 고마움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본다.

비는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창밖을 두드리며 내 마음 깊이 스며든다. 그러고 보니 어느 틈에 칠순을 훌쩍 넘겨버린 내 모습을 돌아본다.

청주에 사는 큰며느리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얘야, 내년부터는 수원 우리 집에서 너희도, 작은 아이도 할머니 추도식을 올렸으면 좋겠 다.”

큰며느리가 유쾌하게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보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시어머니가 키워주신 내 아들 둘이 자라서 이제 모두 40대가 되었다. 그런데 직장과 사업으로 바빠 부모를 찾아오는 일이 점점 뜸하고 보니 늘 보고 싶다.

아무튼 오늘은 시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생전에 보살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엔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기간 아파 병원 생활하다가 퇴원 후 살림이 몹시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한 달 이상 머물면 싫었다. 시어머니에게 가난이 들통나버리는 게 죄송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해였다. 시어머니가 시골집으로 가신 뒤 어쩌다가 냉장고를 열었는데 꼬깃꼬깃 공책 장에 포장한 누런 돈뭉치를 발견하였다. 13만 5천 원, 그 무렵 쌀 한 가마값이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며, 시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느꼈던 추억으로 마음이 더 따뜻해지며 눈시울이 젖는다.


김옥순 수필가
김옥순 수필가

1986년 《아동문예》동화, 1993년《수필과 비평》수필 등단

동화집『아프면서 크는 아이』『칠공주집 칠순이』외 11권

수필집: 『나는 가을이면 집시가 된다』『내려놓기 연습』』

세계동화문학상(아동문예), 계간문예 작가상, 작품상, 수원문학대상외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 문인협회 이사, 아동문예 감사, 계간문예작가회 이사


이서등 캘리화가
이서등 캘리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