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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음식 먹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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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음식 먹는 순서
  • 채찬석 수필가
  • 승인 2022.07.22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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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마치고 몇 사람이 가볍게 입가심이나 하고 가자하여 생맥주 집에 들어갔다. 생맥주에 먹태를 안주로 주문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먹태 한 마리를 접시에 얹어 오더니, 먼저 머리와 꼬리를 떼어 한 쪽에 놓고 가운데에는 몸통을 찢어 놓았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안주를 집었다. 먼저 거친 것들을 골라내고자 대가리를 집어 조금 붙어있는 살점을 뜯어 먹었다. 다음에는 꼬리를, 그 다음에는 등뼈에 말라붙은 살점을 발라 먹었다. 그런데 왜 나는 결이 좋은 몸통 고기를 먼저 먹지 않고 거의 버려야 할 부위부터 집어든 것인가? 습관 때문이다. 버릴 것부터 치우고 좋은 부위를 차근차근 먹기 위해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좀스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안주를 다 먹기 전에 일어나 이 집을 나갈 지도 모른다. 혹시 모자라면 안주를 더 주문할 수도 있는데 왜 남겨두고 가도 아깝지 않을 대가리와 꼬리부터 먹는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닭을 잡아 국을 끓이거나 백숙으로 상에 내놓을 때, 항상 아버지 앞에 닭대가리와 닭발을 놓아드렸다. ‘왜 아버지는 먹기 좋은 닭다리나 가슴살 대신 볼성 사나운 대가리와 닭발을 먼저 드실까?’ 선친은 생선을 드실 때도 먹음직스런 몸통을 집지 않으셨다. 집안의 어른이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장 고생하시는 가장이니 가장 좋은 부위, 가장 맛있는 걸 드실 권리와 자격이 있는데…. 그러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된 것은 좀 철이 들었을 때였다. 자식들이 좋은 음식을 먹도록 배려했던 거라는 걸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식습관은 돌아가실 때까지 바뀌지 않으셨다.

30년 전이다. 부모님과 동생들, 일곱 식구가 함께 살던 어느 날, 식사를 시작하는데 동생이 냄비 안에 있는 고등어찜 중 통통한 몸통을 얼른 집어 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부모님이 계시니까 부모님 드시라고 놔두어야 도리일 텐데 선뜻 집어다가 제 밥 위에 얹어놓고 먹었다. 부모님은 물론 맏형인 나도 있는데, 아무 거리낌 없이 가져가는 걸 보고 섬뜩했다. 동생이 주저하지 않고 갖다 먹는 걸 보며, 어쩌면 저렇게 용감할 수 있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30년이 지난 일인데도 지금까지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먹을 것은 물론 여러 가지를 가족들에게 양보하셨다. 친척이나 사위가 와서 식사할 때도 그랬다. 음식만 그런 게 아니었다. 먼저 식사를 마치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워주셨다. 친척이나 사위가 마음 놓고 먹도록, 또 담배를 편하게 피우도록 자리를 피해 주신 것이다. 함께 앉아 하고 싶은 말씀도 있었으련만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도록 자리를 피해주신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포도나 딸기 등의 과일을 먹을 때는 좋은 것부터 골라 먹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것을 위주로 먹게 되고, 먹다 남아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좋지 않은 것부터 먹기 시작하면 남는 것은 항상 좋은 것이 남아 나쁜 것만 골라먹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좋은 것부터 먹기보다는 좋지 않은 것부터 치운다. 그래야 나중에 먹더라도 싫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덕을 베푸는 일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예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끼는 게 천성인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특히 45년 전인 스물세 살 때에 가나안농군학교에서 1주일을 교육받았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가르쳐 준 것 중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근면과 절약정신이다. 세수할 때에 비누는 두 번만 문대고, 치약은 0.5 cm만 짜 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절약, 내핍생활을 해야 저축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고 배웠다.

그래서 그렇게 실천하려고 신경 쓰다 보니, 아내와 자식들은 지금도 아버지는 너무 지독 하다고 흉을 본다. 그럴 만하다. 옷은 10년 넘게 입는 것은 보통이다. 20년 이상된 넥타이와 셔츠도 있다. 총각 때 선보려고 장만한 양복을 30년 정도 입었다. 그렇게 옷을 아끼다 보니 색상이 퇴색하거나 유행이 지난 게 많다. 1년에 몇 번도 입지 않으면서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옷장에 빼곡히 걸어놓고 산다. 좀더 옷이 상하면 작업복으로 입으려고 놔두는 것이다.

옷을 아끼다 보니 10년 이상 지나, 색상과 모양은 입을 만하지만 유행이 지나 바지통이 너무 넓거나 상의가 길어 엉덩이를 덮는다. 체격이 달라져 몸에 잘 맞지 않는다. 새 옷과 헌 옷의 차이는 대체로 색상의 선명도에 달려있다. 그래서 겉옷의 세탁은 자주하지 않으려 한다. 옷을 세탁해 말릴 때에는 뒤집어 걸어놓으라고 한다. 속옷이야 청결해야 하므로 자주 세탁해야 하지만 겉옷은 더럽게 느껴지지 않으면 되도록 세탁하지 말라고 아내에게 당부한다. 아내의 일을 덜어주거나 드라이 비용을 아끼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세탁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에 환영받지 못할 신랑감이다.

생맥주 집에서 맥주 한 컵씩 비우고 일어났다. 먹태 안주가 반은 남았다. 그렇게 남길 거면서 왜 대가리와 꼬리부터 먹느라 힘겹게 씹었는지 모른다. 습관이 몸에 밴 탓도 있지만 남에게 무례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의식 때문인 것 같다. 질 좋은 부위부터 골라먹는다고 눈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이제 우리나라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음식 버리는 일은 아직도 서툴다. 내 습관은 여전히 예스럽다.

 


채찬석 수필가
채찬석 수필가

약력

수원문인협회 회원

전 연무중학교 교장

청소년 교육을 위한 수필을 주로 작성.

수필집 『나는 사람을 발견한다』 외 3권 발간

2012년 제1회 대한민국스승상, 자랑스런수원문학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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