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 서울
    B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B
    미세먼지
  • 부산
    B
    미세먼지
  • 강원
    B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B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B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아침에 읽는 수필] 문득 궁금한 사람들
상태바
[아침에 읽는 수필] 문득 궁금한 사람들
  • 김숙경 수필가
  • 승인 2022.04.29 15: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당역 4번 출구는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한 젊은 외국인이 종이박스에 무언가를 적은 팻말을 앞에 두고 앉아있다. 누군가가 사정을 알고 써준 듯 도움을 요청하는 문구다. 지갑을 잃어버려 돌아갈 수 없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황당했을 그 청년을 지나칠 수 없어 5천원을 모금한 가방에 넣었다. 천 원, 오천 원, 만 원 권을 보니 세상 사람이 다 나쁘진 않아 그 사람에게 말하는 듯 보였다. 정말 그 남자가 고국으로 잘 돌아가길 바라는 따듯하고 소중한 베풂 같았다. 내 옆으로 긴 머리를 한 아가씨가 지갑을 여는 걸 보고 버스를 타려고 나왔다.

나오는데 뭔가 마음 한구석 짠해지는 건 뭘까. 이역만리 타국에서 갈 길을 잃은 나와 여행을 즐기는 딸을 대입시켜 본다. 역지사지가 된다. 나라면 딸이라면, 또 본가 미국을 놔두고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사위를 생각하게까지 했다. 느닷없이 당한 일에 말이 안통해서 겪게 될 상황들을 생각해 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를 곧바로 탈 수가 없었다. 물이라도 사주고 싶어 편의점 문을 열었다. 네 시가 다 된 시간이었으니 밥이라도 먹었을까 싶어 버스 타는 곳 포장마차에서 김밥을 샀다. 괜스레 마음이 바빠졌다. 그사이 어디론가 떠났으면 어쩌나. 들고 있는 물과 김밥은 꼭 건네고 싶었다.

계단을 타고 다시 내려가니 그곳에 그대로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외려 마음이 놓인다. 물과 김밥을 받아 드는 외국인 청년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이 선해 보인다. 팻말에 적힌 이유가 전부가 아닌 나름 사연이 있겠지만 어디 회화가 되어야지. 그저 너의 나라나 너의 거처로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던 길로 다시 향했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한일이 하나 둘 쌓으면 그것도 덕이 되고 복이 될라나. 설령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어렵고 힘든 사람이나 그런 일들을 보면 용기 있게 도와주고 싶다.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실행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상은 불신으로 가득 차 누구를 믿지 못하는 일이 많다. 저 젊은이도 좋게 말하면 팻말에 적힌 그대로의 상황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돈을 착취하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 정말 지갑을 잃어버려 저렇게 할 수밖에 없나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로 저러는 걸까. 이 생각 저 생각이 깊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만약 그대로 돌아서 집으로 간다면 나는 또 후회할 일 하나를 남길 테니까.

하지 않아서, 하지 못해서 후회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이니 고민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마음속에 걸리는 일이 있다. 흔쾌히 베풀지 못한 사연 몇 있다. 터키 여행에서의 일이다. 일행들과 거리를 걷다 만난 시리아 난민 어린아이 둘이 도와 달라고 손 내미는데도 선뜻 주지 못했다. 그까짓 1달러에도 인색했던 나 자신,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천몇 백 원, 아깝다기보다 그 순간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기에 선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데 나만 그러는 것도 어떻게 생각할까 지레짐작한 탓이다. 오지랖 넓다는 비웃음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그 아이들과 엄마가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 가면 버스킹 공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간혹 외국인도 보인다. 공연 중이나 공연이 끝나면 그들을 위해 자진해서 모금함에 성의 표시한다는 걸 알았다. 그때는 매번 넣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내게 마음 쓰이는 사람은 남의 나라에 와서 외로운 듯 혼자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그 앞에 놓인 단 몇 푼의 동전과 몇 닢의 지폐들이 그들의 모습처럼 쓸쓸해 보인다. 딸과 일본 여행 중에 만난 허름한 복장을 한 바이올린을 켜던 외국인 남자에게도 1달러 놓아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눈빛이 애절해 보였다. 내 눈에만 그리 보인 건지. 그때도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지 못해서 여행에서 돌아와 버킷리스트 순서에 넣을 만큼 내면의 약속을 만들고 싶었다.

가엾고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자. 단 얼마라도 그들과 나누자. 그런 취지로 실천하고 싶었다. 그 뒤로 추운 겨울날 휴게소에서 만난 기타 치는 여자에게 계단에 고개를 묻고 있는 노숙자의 동전 바구니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구세군 냄비에 내 마음을 떨어뜨린다. 음으로 양으로 더 많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본다. 비록 적지만 내 눈에 보여지는 아프고 어려운 사람에게 나만의 방법으로 다가서고 싶다. 작은 마음을 보이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이다. 스쳐간 그들 모두는 제자리에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김숙경 수필가
김숙경 수필가

약력

2006년 한국문인 수필부문등단

수원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동서문학회

저서 : 수필집 엄마의 바다

공저 : 동그란 거에 갇히다 외 다수

수원문학인상 수상, 경기한국수필 작품상 수상

 

 

괭이밥 [사진=류중권]
괭이밥 [사진=류중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