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 서울
    B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B
    미세먼지
  • 부산
    B
    미세먼지
  • 강원
    B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B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B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인터뷰] 배성주 침선 명인
상태바
[인터뷰] 배성주 침선 명인
  •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 / 글·사진=허원무 기자
  • 승인 2022.04.18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禮 갖춘 전통한복과 壽衣문화 널리 알리고 싶어요”
배성주 침선 명인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았다.
배성주 침선 명인이 경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잡았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현대로 시대가 이행됨에 따라 우리의 생활 양식은 큰 전환기를 맞이했다. 식습관의 변화, 기술의 발전, 가족 구성원의 변화 등.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의복이라 생각한다. 한복에서 생활한복, 그리고 양복과 같은 서구 복장이 들어오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풍습을 가지게 되었으며 빠르게 변모한 사회는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급격히 현대화를 진행한 부작용으로 근 수십 년 사이 긴 세월 동안 전승됐던 우리의 전통문화는 무관심과 홀대의 연속으로 그 뿌리마저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배성주 침선 명인은 서울시무형문화재 제 11호 침선장 이수자로 유년 시절부터 옷을 지어 만든 어머니의 영향과 옷을 연구하는 열정, 직접 만드는 즐거움이 매우 커 수원과 서울을 오가는 고된 배움의 시간에서도 이 길을 묵묵히 걸었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한 전날, 제5회 개인 전시전을 개최한 배성주 명인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을 위해 전시전 제목을 ‘채비’로 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배성주 명인은 남편과 결혼으로 정착하게 되어 수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저희와의 인터뷰에 앞서 이런 기회를 받아 매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저희 세대 이후로 아랫 세대가 많이 없어 오래 내려온 전통들이 전승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며 넌지시 걱정을 내비쳤다. 또한 “계속해서 한복을 알리고 뒤늦게나마 후학도 양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개인으로 일을 벌리기엔 큰 한계가 있어 힘듭니다”라는 속사정을 전하기도 했다.

 

침선 전수자 많이 생겨나도록 정부 적극지원 필요
新한복 우대, 전통한복 홀대하는 세태…큰 아쉬움

 ▲ 침선 명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저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 11호 침선장 이수자이자 올해 만 59세가 된 침선 명인 배성주입니다. 1남 4녀의 차녀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님은 건축업 관련 목수 장인이었는데 일을 무척 잘해서 명인과 다름없었다고 해요. 유명한 건물 중에 아버님 손길이 닿는 곳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
어머님은 집안일을 도맡아 저희를 키우셨는데 손재주가 남다르셔서 우리 남매들 거의 모든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힐 정도로 솜씨가 좋으셨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류 회사에 들어가 자재과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의류에 관심이 많았었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큰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시기가 되자 직접 옷을 지어주고 싶었죠. 그래서 북문에 있는 한은순 한복학원을 찾아가 2개월 정도 배웠어요. 그때 학원에서 한복의 기본을 배우게 되었어요.
옷 만드는 법을 배워보니까 욕심이 더 생겨 천연염색을 하고 싶어 선생님에게 여쭸더니 몇일 동안 고민하시고는 제게 “성균관대학교에서 600주년 기념으로 평생교육원 교육생을 모집하는데 천연염색도 있더라?”며 귀띔해주셨습니다. 곧장 서울로 달려가 문의해봤더니 그곳에서 천연염색뿐만 아니라 바느질 수업도 같이 하더라구요. 교통수단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시기에서 1주일에 2번 새벽 6시에 꼬박꼬박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배우러 다녔죠. 당시 인연을 맺은 서울시무형문화재 11호 침선장 박광훈 선생님 제자로 들어가 12년 동안 배웠습니다.
본래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많은 시간과 금전이 넉넉해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는데, 남편이 제가 가려는 길을 묵묵히 응원해주고 지원해준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침선의 뜻이 궁금하다.
침선은 바늘 침(針)에 실 선(線)으로 바늘에 실을 끼워서 ‘바느질’하는 것을 뜻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던 것 중 하나가 규방공예 안에 침선이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침선은 바늘과 실이 함께하는 바느질이 관련된 모든 것을 통틀어 침선이라고 배웠습니다. 옷만 짓는 것이 아닌 옷에 필요하면 수도 놓고 소품도 만들고 보자기도 주머니도 만든답니다.

▲ 한복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다. 한복에도 변천사가 있었을텐데.
고려시대에는 직배래(소매가 직선으로 되있는 양식)에 저고리가 길었고 치마를 허리에서 묶어 입었습니다. 이것이 조선시대가 되면서 깃과 섶을 달아 옆에서 묶을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 갔죠. 또한, 16세기까지만 해도 직배래이며 넉넉헀던 옷의 형태가 조선시대 중기 말기로 가면서 남자포의 배래가 넓어지고 여자의 저고리는 길이가 점점 짧아져 말기에는 저고리길이가 진동과 같아졌으며, 치마폭을 넓게 하고 속옷을 겹겹이 입어 풍성하게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에는 명절에만 한복을 입는데 보통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가 전부인 지금과는 달리 과거에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입어 예를 갖추었습니다. 현재의 한복은 예식이나 행사에 입는 한복이기에 폭이 넓고 길이도 길게 제작하기에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복은 불편한 옷이 되어 이런 인식이 굳어지는 것에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습니다.
가령 치마를 발목까지만 내려오게 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저고리길이를 길게하여 소매를 겉고 일을 하면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매일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저의 치마는 짧고 치마폭은 4폭이나 5폭으로 적게하고 저고리는 길게 하여 입고 있습니다. 암홀을 파서 만든 생활한복보다도 전 생활하기 편안합니다. 물론 매일입어 습관이 되기도 하였겠죠. 불편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잘못 알고 있는 생각들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 자꾸만 한복을 기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명주 수의라고 저희 어머니를 위해 처음 수의을 배우면서 만든 어머니의 수의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요. 보통 삼베로 수의를 지어 입는 방식을 전통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국민들을 평준화시키면서 어려운 서민들이 수의로 지어 입었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죄인이라 입었던 거친 삼베를 모두가 입게 만드는 정책을 실시한 것입니다.
덧붙여 우리나라는 본래 망자가 생기면 개인 산소를 만들어 모시는 문화였으나, 일제가 공동묘지를 정책으로 세우고 삼베수의도 함께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본래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었을 때, 당일날 밤에 온 동네 사람들과 집안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집안에 있는 옷감으로 그 사람 지위에 맞는 옷을 만들었습니다. 지방마다 집안 마다 다양한 형태의 수의를 지었으므로 지금처럼 획일화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에서는 이승에서 마지막 시간이지만, 다른 세계로 가는 ‘또 다른 시작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관직이 있는 분은 직분에 맞는 관복을 학자는 심의를 일반 서민은 생에 가장 귀하고 좋은 옷 혼례복을 수의로 사용하였답니다. 또 다른 세상에서 입을 옷들을 시신에게 여러벌 입히고 보공용 사용한 다양한 옷들을 많이 관에 넣었다고 합니다.

▲ 20여년 동안 침선 작업을 해 명인이 되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솔직한 이야기로 감회는 크게 없어요. 그냥 처음엔 너무 재밌어서 밤인지 낮인지도 모를 정도로 손바느질을 계속했어요. 
특히 출토복을 논문이나 학술지로 접할 때마다 시대, 집안, 성별, 지역, 계파에 따라 옷들이 다 개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옷이라도 주름 하나, 깃의 모양 등 세세한 것까지 동일한 것이 없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지금도 출토복 학술세미나가 있으면 가서 자료를 받아와 재현해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양식을 요즘 입을 수 있는 옷에 도입해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예쁜 수의를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출토복을 재현한 작품들을 전시해 예를 갖춘 우리 전통수의와 수의 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 침선을 공부해 전수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전통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게 있습니다. 전통이 무너지면 나라의 정체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예로 신 한복은 대대적 지원을 받지만 전통없는 신 한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을 경시하고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에 속상함을 감출 수 없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하고자 하지 않는 건 사실 한복 사업 자체가 지원이 안되고 생업으로 삼기가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계속해서 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