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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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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나의 아버지
  • 조경식 수필가
  • 승인 2021.12.2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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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추위에 몸이 움츠러든다. 하지만 저만치서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겨울날의 냉기를 감싸줄 봄이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는 걸 느껴보기 위해 정갈하게 머리를 빗고, 연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앞이 넓게 트인 베란다 창 너머를 응시한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도 그 위치나 햇살의 강도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함을 보며 많은 걸 느끼고 깨닫는다.

먼 하늘을 바라보니 불현듯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친정아버지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연민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보다. 내 기억 속에서 이미 희미해져 버린,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 제삿날도 아버지를 미워하는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그래도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면 잘 차려 드리고 싶으냐.”고 묻기도 했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첫 기억으로는 철도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열차도 우리는 공짜로 타고 목욕도 철도청에 가서 어린 형제들이랑 함께 갔던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부터인가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직에 근무하는 친구 분들과 아버지는 마작이라는 노름에 빠져 지냈다. 나는 매일 엄마 심부름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급기야는 직장도 그만두고 퇴직금도 혼자 다 날려버렸다는 엄마의 한탄을 지금도 기억한다. 자식을 오남매나 두고도 도무지 책임을 지지 않고 밖에서 겉돌며 방황하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자연히 우리에게 화풀이를 했는데 내가 제일 편하게 생각됐는지, 아니면 나를 낳아놓고 부부애가 멀어졌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유독 나를 구박하고 일을 많이 시키고 공부도 안 가르치셨다. 많이 울고, 많이 방황했고, 엄마를 미워하며 원망도 해 봤지만 어린 소녀였던 나는 아무런 저항할 힘도 없었고 오히려 엄마가 가엾어서 그냥 엄마를 도와드렸다.

나는 공기업 서무과에 근무하며 말없이 묵묵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못하는 게 없는 착한 사원이 되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큰 아이를 출산하기 며칠 전에 아버지가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의 큰아이 출산예정일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있는데 돌아가시니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척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시어머님께서 부정 탄다고 못 보게 하셨다. 눈물도 안 나왔다. 뭐가 뭔지 판단이 안 섰다.

결국 장례식을 치르고, 그날 저녁에 진통이 시작돼 이틀 후에 큰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연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와 나는 서로 맞는 게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내 직장 앞까지 찾아오셔서 한 번만 돈을 주면 다시는 노름을 안 하겠다고 하실 때마다 나는 단호히 십 원 한 장 안 드리고 돌아가시라고 했다. 나보고 너같이 독한 애는 처음 봤다고 하면서 “돈 한 번만 주면 다시는 안 그럴게. 그 약속 안 지키면 내 손목을 네가 자르라.”고까지 했다. “올바른 일에 쓰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드려요. 제발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라고 나는 울며 매달렸다. “미운 아버지, 아버지 이러지 마시고 우리 열심히 살아봐요.”하면서 연탄장사까지 같이하자고 어린 내가 연탄 배달까지 같이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아버지는 어느 새 어딘가로 또 집을 나가버리셨다.

도대체 그 무엇이 아버지를 그렇게 가정에 재미를 못 붙이게 한 걸까? 이제 나이 먹어보니 오히려 가엾은 생각까지 드니 갑자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밀려온다. 물론, 부질없는 일이지만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자기 역할을 안 하신 건지 못 하신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인생은 오십일 세로 막을 내렸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 한 번 찾아오셔서 어느 식당인가에 데려가셔서 밥을 사 주셨던 희미한 기억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나의 남편이 국립의료원에 근무하는 중이라 입원시켜 드리고 찾아가면 남편에게 더 살고 싶다고 하셨단다. 싹싹하고 인정이 많으며 똑똑한 셋째사위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으신 걸 보면 아마도 지금 생각하니 대화상대를 몹시도 그리워하신 것 같다.

돌아가신 지 삼십여 년이 지나도록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제삿날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글을 쓰며 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되돌아보니 아버지의 인생이 참으로 어이없기도 하고 외로운 남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나를 낳으면서 부부애가 멀어진 건가? 왜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셨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따사로운 봄날이 오면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서 아버지에게 여쭤봐야겠다. “아버지, 왜 그렇게 가정을 멀리 학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외로운 남자로 생을 마감하셨느냐고. 내가 많이 쌀쌀맞게 대해드려서 죄송했다고…….”

 


 

조경식 수필가, 시낭송가
조경식 수필가, 시낭송가

 

약력

 

수원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회 차장 역임

「한국작가」수필부문 신인상 등단

한국시낭송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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