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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내 이름은 백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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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수필] 내 이름은 백합화
  • 강양옥 수필가
  • 승인 2021.09.12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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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옥 수필가. 시인수도여자사범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동양문학 신인상 수상, 경기문학인 대상, 경기여류문학회 대상, 수원문학상 수상, 경기 펜문학회 작품상수필집 「금빛 내리는 계절」, 「운평선」, 「추억에 비치다」시집 「내 영혼의 텃밭에는」, 「세월은 구름타고」, 「사랑초」등 다수수원문인협회 원로(회원)
강양옥 수필가. 시인수도여자사범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동양문학 신인상 수상, 경기문학인 대상, 경기여류문학회 대상, 수원문학상 수상, 경기 펜문학회 작품상수필집 「금빛 내리는 계절」, 「운평선」, 「추억에 비치다」시집 「내 영혼의 텃밭에는」, 「세월은 구름타고」, 「사랑초」등 다수수원문인협회 원로(회원)

가랑잎 굴러가는 것만 봐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던 나의 학창 시절은 까마귀가 물고 가버렸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서민들 생활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누더기라도 걸칠 게 있고 굶지 않으면 다행인 생활이 이어졌다. 기어서 들어가야 할 판자촌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사는 사람이 천지였다.

교육 환경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교통수단은 전차뿐이었고 버스나 자가용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등교를 하려면 전차를 타야 하는데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렸다 타면 지각하기 일쑤였다. 고민 끝에 나는 서대문에서 종로까지 걸어서 등교하기로 했다.

걸어가다 보면 재미나는 일이 많았다. 우리가 가는 반대 방향에 서울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등교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만나지는 학생이 있었다. 조금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면 우리가 늦은 거고 조금 먼 거리에서 만나면 우리가 이른 거였다. 한 마디로 그 학생이 시계인 셈이다. 스치며 서로 침묵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으로는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에 가방을 두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했다. 아침 조회는 언제나 교장선생님 훈시로 시작하여 훈시로 끝났다. 물론 학교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조희가 끝나면 우르르 각자 교실로 들어가 수업준비를 했다.

국경일이나 기념일에는 서울시내 학교가 총동원되어 동대문운동장에 모여 기념식을 했다. 식이 끝나면 곧바로 서울시내 행진을 했다. 어느 해 광복절 행사 때 광화문 거리행진을 하는데 너무 더웠다. 내리쬐는 태양에 사람조차 아스팔트처럼 녹을 것 같았다. 목도 마르고 지쳐서 한 발짝 떼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 같으면 땡볕에 학생들 혹사시킨다고 난리겠지만 그땐 모두 순진했다. 어쩌면 전쟁과 가난을 모두 겪은 세대라 그만한 어려움은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학생이 없었다. 그땐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고생조차도 낭만이고 뿌듯함이었다.

당시 우리 반 학생들은 이름 대신 예명을 지어 부르는 게 유행이었다. 모두 자신을 꽃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라 감성이 풍부했기 때문일까. 꽃 이름으로 예명을 지으니 뭔가 달리 보였다. 친구들보다 더 우아하고 섹시하고 고상해 보이고 싶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며 꽃말까지 찾아가며 예명을 지었다.

백합화. 장미. 국화. 무궁화. 백일홍. 수선화. 등 모든 꽃 이름이 동원되었다. 나는 백합이었다. 백 가지나 되는 다양한 색으로 꽃이 핀다는 뜻이 좋았다. 당시 나는 꿈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그 마음을 다양한 색의 백합에 비유한 것이다. 개나리라 지은 친구는 개나리로 장미로 지은 친구는 장미로 불렸다. 우린 꽃처럼 살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계속 보면 시들해지기 마련인 탓에 우린 다시 새로운 걸 찾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번엔 영어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이국적 이름은 일상에 시들한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릴리”, “로즈” 부르며 청춘의 부푼 꿈을 꾸었다. 이름을 지을 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부르기 좋아서, 예뻐서, 발음하기 좋아서, 근사해서, 뭔가 있어 보여서… 꽃 이름을 지을 때처럼 영어 이름을 지을 때도 기준은 소박했다. 단지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특별해진 느낌으로 우쭐거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소소한 것 하나도 소중하고 그립고 애틋하다. 단 하루 만이라도 돌아가 보고 싶은 시간이다. 예전에 유행하던 여고시절이란 노래를 들을 때면 내 가슴은 아직 청춘이다.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놀이이자 유일한 관계망이었다. 꽃 이름을 지어 부르던 때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래도 아날로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김지연 화가 「붉은 자작나무 숲」
김지연 화가 「붉은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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