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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덤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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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문학광장]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덤이 주는 선물
  • 정명희 수원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1.08.23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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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꽤 늦은 밤 책상 위를 너절하게 늘어놓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여유라고는 한 눈금도 없는 이 순간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한다면 어떤 내용일까 잠시 생각하다 심호흡을 해 본다. 머릿속에선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듯 기억의 자판을 두드리는데 채 끄지 않은 에어컨에서 ‘가을이야’ 라고 하며 기침을 하게 한다. 그래 이 시각은 너도 잠을 자야지. 묻지도 않은 말에 그럴싸한 대답을 얹으며 얼굴을 쓰다듬는다. 이제 떠나가야지. 하던 일에서도 해야 할 일들에서도. 나의 증세가 중증에 접어 들었는 걸. 중얼거리며 헤설픈 책임감에 무게를 더해 본다. 노상 쓰던 자판도 지루하기는 마찬가진지 알아 보지 못하는 글자를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낸다. 참 고약한 녀석이야/ 영문자도 뱉어 놓고/ 아랍어 같은 비밀문자도 슬쩍 흘리며 토닥거린다. 오늘은 왜 있는거지?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어제의 일들이 기억속에서 돌돌돌 굴러와 몽롱한 시야 속에 앉아 측은한지 지그시 지켜 보고 있다.

참 그랬지. 어제는 하루 종일 바빴고 즐거웠고 설렜었지.

돌이켜보니 그런 날도 흔치 않다. 머리속으로만 생각했던 통장의 아귀가 맞춰지며 꼭 누군가 회전축을 휘익 돌려 침침하고 묵직한 것들을 쑤욱 빼내 버린 듯 하니까. 그래 이런 일도 있어야지. 좀 더 시간의 퍼즐을 다시 촘촘하게 놓아본다면 며칠동안 숫자와 계획서의 괴리와 상상 속에서 용케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깔끔한 변모를 경험한 점. 얼마동안의 상쾌함인지 공연히 몸이 흔들어지고 기분이 상승했다.

내다 버리라고 종종거리던 청소기를 얼마동안 차 뒷좌석에 쓸어트려 놓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에 에이에스 센타로 달려갔다. 한시간 삼십분은 기다려야 할걸요. 센타의 안내원이 대기표를 건네주며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하란다. 기다리는 것은 아예 접은 지 오래니 당연히 다른 일을 하러 내려가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일층에서 6개월이나 하지 못한 핸드폰의 문제를 물어보고 몇 개는 해결했다. 다행이라는 생각, 그 것도 기분 좋은데 가려하니 벌써 30분이나 지나고 다시 센타로 올라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본다. 의자에 앉아서 주욱 둘러보다가 센터 쪽에 있는 청소기를 본다.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 바로 내가 가져온 청소기다. 때가 살짝 묻고 어딘가 관리가 안 된듯한 청소기, 꼭 내 모습 같다. 그런데도 어색하다. 쟤는 왜 저기에 있는거지? 보기싫게. 생각하다가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너도 나 만나서 고생이구나, 쓸데 없이 여기까지 끌려 오고’ 그것도 맞는 것이 청소기를 별로 안 썼다는 생각이다. 청소기를 사고는 얼마 있다가 먼지가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자꾸만 거꾸로 다시 빠져 나오는 것이다, 별꼴이야. 뭐 이런 청소기가 있지/ 하며 아주 바쁠때나 청소기를 돌리고는 먼지가 거꾸로 빠지든지 말든지 공연히 미워져서 상관도 안했다. 언젠가는 센타에 가져가야지 한 게 일 년도 넘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정확히 한 시간은 족히 넘어 번호를 부른다.

은행이든 센터든 기다리다가 번호를 부르면 그저 기분이 좋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담당직원이 무척 친절하다. 다시 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 청소기 열 번 도 안 썼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니 그가 웃는다. “아닌 것 같은데요. 청소기 속에 먼지가 잔뜩 들어 있거든요. 그 바람에 빨려 들지 않는 건데요.” 기가막힌 말이다. ‘산지 얼마 안돼서 벌어진 일인데 무슨 말이야.’ 속으로 갸웃거리는데 “이리 와서 보세요. 청소기가 잘 안 돌아가면 이 곳과 저 곳을 빼서 잘 살펴 보세요. 오늘우리 센타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수고비 만 칠천원은 받지 않겠어요.” 횡재다. 어째 이런 일이 나한테 다 생기다니. 오늘은 정말 해피데이인가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면서 센타를 나와 식사를 하고 회의장에 간다. 회의는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을 듣는 자리다. 더해서 내년에는 삼년 전에 받았던 것처럼 올려 주겠단다. 한동안 십 원 한 장 받지 못했는데 이런 배려가 있다니. 한꺼번에 미워하던 사람들이 다 멋져 보인다. 편지라도 써야 할 것 같다. 서로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던가. 그런데 돌아오면서 걱정이 앞선다, 지원금을 잘 써야 할텐데. 회원들도 좋아하고, 회계처리도 잘 하고. 결과까지 좋아서 다음 일에는 더욱 빛이 나야 할텐데 하는 생각. 공연히 앞일까지 붙여서 즐거운 상상걱정을 하고 있다,

갑자기 한껏 시원해진 가을바람이 어깨를 슬며시 잡아 준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위로가 바람의 손길에서 듬뿍 담겨 전해온다. 기분이 좋으려니 더하기가 되는 듯 사무실로 돌아오니 아버지 같은 선배 선생님께서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씀이 빨라지신다. “나 내일 시골에 갈 거야. 깻단을 베어 놓고 왔는데 비오면 걱정 돼서. 한참 있다 올 건데 혹시 호박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손을 흔들며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떠나가신다. 지나가던 가을바람도 함께 손을 흔들며 따라간다. 매일 이런 날만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 시간 내서 회원들이랑 시골에 내려갈게요.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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